종묘와 세운지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높고 낮음으로 접근하는 것은 도시의 본질, 서울의 잠재력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읽는 것이다. 1960년대 지어진 세운상가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도심 산업·상업공간이었으나, 시대 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도심 황폐화가 이어져 맞은편 세계문화유산 종묘는 고립돼 있다.
문화유산 보존과 도심 활성화는 대립 개념이 아니다. 공생·공존하며 서로의 가치를 증폭시킬 수 있다. 실제 북악산~종묘~세운녹지축~남산의 육경축은 1994년 도심재개발기본계획, 1997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이미 도심 공간구조 핵심축으로 제시됐다. 이 축이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수경축과 연계된다면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서울의 고유한 도시골격이 될 것이다.
남진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이 골격 복원의 논의 앞에서 높이 논쟁은 저차원적이다. 문화유산은 높이 규제로 보존할 수 없다. 숭례문과 흥인지문, 탑골공원 주변이 시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정체된 공간으로 남아 있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이 지역의 높이를 규제하여 문화유산이 시민들에게 더 가까워졌는가? 시민들은 문화유산을 더 잘 이용하는가? 오히려 시대에 뒤처진 주변 환경과 단절된 도시공간 속에서 문화유산은 더 고립됐다.
이제는 문화유산과 도심이 서로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점·선·면을 연결하는 입체적 공간계획이 절실하다. 문화유산과 주변 도심공간이 상호작용하고, 생활과 업무, 공공공간과 도시경관이 입체적으로 결합하면서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현대 도시에서 시민들의 요구는 빈약한 높이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문화유산이 도시의 일부가 되고,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생활하고,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창의적, 혁신적 공간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강북은 단순히 개발이 더딘 지역이 아니다. 강북은 ‘무엇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라 ‘풍부한 자산을 지녔음에도 활용되지 못했던 지역’이다. 이 점에서 세운지구 재개발은 강북 도심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첫 무대로서, 강북 전성시대의 신호탄을 뜻한다. 이미 강북 곳곳에서는 이 변화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창동차량기지 일대 미래산업거점 조성, K팝 전용 공연장인 서울아레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그리고 신속통합기획 정비사업 활성화 등은 서로 독립된 사업이 아니라, 강북이 가진 고유한 역사, 문화, 생활 콘텐츠 등 도시적 잠재력을 현재와 미래의 가치로 재해석하는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다.
도시를 보존과 개발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다루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금은 도시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서울의 도시공간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운지구 논쟁은 단순히 한 블록의 개발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이 아니다. 이것은 서울이 앞으로 어떤 도시가 될 것인지, 강북이 어떤 미래를 열어갈 것인지에 대한 담론의 출발점이다. 더 이상 이 지역의 변화를 미루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에게도, 미래 세대에게도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다. 높이 논쟁을 넘어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본질을 다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강북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