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규모 10배 확장…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조성

반도체 세계 2강 도약 ‘4S전략’은

韓 세계 시장 점유율 고작 0.8% 그쳐
이대로면 ‘메모리 하청국’ 전락 불보듯
4.5조원 규모 국가상생파운드리 추진
李 “금산분리 완화 요청 일리 있다” 언급
반도체대학원 설립… 年 300명 인재 배출

10일 정부가 ‘반도체 세계 2강 도약’을 위해 발표한 ‘반도체 4S’ 전략의 배경엔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이 우리 반도체 산업에 절체절명의 기회이자 위기라는 판단이 깔렸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최강국’으로서 AI 반도체 붐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밸류체인상 나머지 팹리스(시스템반도체 설계), 파운드리(수탁 반도체 제조), 패키징 분야에선 미국, 대만 등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대로라면 단순 ‘메모리 하청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정부·민간 등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반도체 4S 전략은 △반도체 기술·생산 주권(Sovereignty) 확립 △시스템반도체 역량(Strength) 강화 △반도체 소부장·인력 공급망(Supply chain) 확충 △반도체 생태계 확장(Spillover)으로 구성된다.

 

AI 미래기술 콘퍼런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이 1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 인공지능반도체 미래기술 콘퍼런스에서 신동주 모빌린트 대표로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4S의 핵심은 AI 확산을 우리 반도체 산업 성장 기회로 활용하는 동시에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해 압도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2047년까지 약 700조원 이상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팹(공장) 10기를 신설하고, 국내 팹리스의 제조 지원을 위해 4조5000억원 규모의 국가 1호 ‘상생 파운드리’를 설립할 계획이다.

 

반도체 생태계를 받치고 있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경우 2027년까지 국내 최초로 칩 제조기업과 연계한 소부장 양산 실증 테스트베드인 ‘트리니티팹’을 개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광주(패키징)·부산(전력반도체)·구미(소재부품)를 잇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를 통해 새로운 반도체 생산거점 기반을 닦는다. 인재 확보 차원에선 국내 첫 반도체 대학원대학을 설립해 연간 300명의 반도체 관련 석·박사를 키워낸다.

 

이번 전략의 핵심축은 팹리스 육성·지원이다. 시스템반도체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의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0.8%로 미국(80.2%)의 10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매출 기준 23억달러 수준인 국내 팹리스 규모를 10배 이상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개최된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이 같은 전략을 밝히며 “반도체 주도권 확보에 우리 산업의 명운이 달린 비상한 시기인 만큼, 그동안 실행에 옮기기 어려웠던 비상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주요국들은 이미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을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대항전으로 변모시켰다. 미국(527억달러, 약 77조5000억원), 중국(6868억위안, 약 143조원), 유럽연합(430억유로, 약 73조5000억원) 등 경쟁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에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한국은 2011∼2020년 기준 반도체 분야에서 대규모 국책 연구개발(R&D) 사업이 사실상 부재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보고회에서 SK하이닉스의 금산분리 규제 일부 완화 요청에 “일리가 있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금산분리라는 원칙으로 금융조달에 제한을 가하는 이유는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인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 분야는 사실 그 문제가 이미 지나가 버린 문제고 어쩌면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며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거의 다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한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성능을 측정하는 세부 지표인 ‘K퍼프(Perf)’를 발표했다. K퍼프로 국산 NPU를 도입하고자 했던 수요기업들이 구체적인 데이터를 손쉽게 확보하면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