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섬나라 아이슬란드가 이스라엘의 참여를 이유로 들어 2026년 ‘유로비전 가요제’(Eurovision Song Contest)에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이스라엘 퇴출을 요구하며 유럽 최대의 음악 축제 보이콧을 선언한 나라는 총 5개국으로 늘었다. 유로비전 가요제는 1956년 출범한 유럽 가수들의 경연 대회로, 내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열릴 대회는 유로비전 70주년에 해당한다.
10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이날 유로비전 가요제를 주관하는 유럽방송연맹(EBU)에 ‘2026년 대회 불참’ 입장을 최종 통보했다. EBU는 유럽 각국의 국영 또는 공영 방송사를 회원으로 거느린 국제기구로, 이이슬란드의 경우 국영 방송사 RUV가 EBU에 가입해 활동하는 중이다. 아이슬란드는 유로비전 가요제에서 아직 우승을 한 적은 없고 1999년과 2009년 각각 2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아이슬란드 RUV의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경연 대회 참여가 EBU 회원사들과 유럽 대중 사이에 불화를 초래했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경연 대회가 우리에게 평화도, 기쁨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2023년 10월 시작해 2년 넘게 지속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근거지인 중동 가자 지구를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퍼부으며 현재까지 7만명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비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최근 휴전이 이뤄지긴 했으나, 가자 지구는 여전히 불안감이 팽배하고 질병과 굶주림도 만연해 있다.
아이슬란드에 앞서 스페인, 아일랜드,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4개국이 “유로비전 가요제에서 이스라엘을 퇴출해야 한다”며 2026년 경연 대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국제법상 중대한 범죄로 통하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저질렀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속하지 않으나 공영 방송사 KAN이 EBU에 회원으로 가입하며 1973년부터 유로비전 가요제에 참여하고 있다. 2018년을 포함해 총 4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5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69회 경연 대회에 출전한 신인 가수 유발 라파엘(24)이 치열한 경합 끝에 2위에 올랐다.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라파엘의 출전 및 입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대회 운영이 차질을 빚을 뻔했다.
EBU는 지난주 총회를 열고 일부 회원사가 요구한 ‘이스라엘 퇴출’을 안건으로 올려 투표를 했는데 다수의 반대로 부결됐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크고 인구도 제일 많은 목일이 “만약 이스라엘이 퇴출을 당하면 우리부터 유로비전 가요제를 보이콧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을 강력히 옹호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편 막판까지도 보이콧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한 폴란드는 경연 대회에 계속 참가하기로 했다. 폴란드 공영 방송사 TVP는 “이스라엘의 참여를 불편하게 여기는 일부 국가 및 국민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유로비전 경연 대회는 여전히 정치와 무관하게 음악을 향한 열정만으로 가득한 행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