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비자 면제국의 단기 방문객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전자여행허가(ESTA) 제도에서조차 신청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검열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처사이자 미 여행산업 등에 치명타를 가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면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100만달러(약 14억7000만원)를 미 정부에 기부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골드카드 영주권’ 프로그램 시행을 본격화해 ‘외국인 골라 받기’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NBC방송 등에 따르면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ESTA 신청자의 최근 5년간의 SNS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규정안을 이날 관보를 통해 공개했다. CBP는 또 가능한 경우 신청자가 지난 5년간 사용한 개인 및 사업용 전화번호, 지난 10년간 사용한 개인 및 사업용 이메일 주소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기로 했다. 심지어 신청자 가족의 이름과 지난 5년간 전화번호·생년월일·출생지·거주지, 신청자의 지문·유전자(DNA)·홍채 등 생체 정보도 요구할 수 있다.
ESTA는 미국과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한 국가의 국민이 따로 비자를 받지 않아도 출장, 관광, 경유 목적으로 미국을 최대 90일 방문할 수 있게 한 제도로, 한국을 포함한 42개국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ESTA 신청자에게 여권 정보와 간단한 개인 신상, 미국 체류 관련 정보 등만 요구했다. SNS 계정은 2016년부터 ‘선택 입력’으로 추가됐으나 미제출 시 불이익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SNS 제출을 의무화하며 사실상의 ‘검열’을 예고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이민변호사협회 전 회장이자 WR이민법률사무소 파트너인 파르샤드 오지는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성명에서 ESTA 신청자들에 대한 SNS 검열이 “여행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정책으로 인해) 사람들이 스스로 검열하게 될 것이고, 아예 미국 방문을 피하게 돼 미국의 관광, 비즈니스, 글로벌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인의 권리와 표현 재단’의 선임연구원 사라 매클러플린도 미국 악시오스를 통해 “이번 방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실천이 아닌 허울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며 “자유에 대한 확신이 있는 국가의 행동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마침 같은 날 100만달러를 내면 미국 영주권 혹은 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는 부자 이민 프로그램인 ‘트럼프 골드카드’가 이날 공식 사이트를 개설하고 신청을 받기 시작해 논란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트럼프 골드카드 외에도 500만달러를 내면 면세로 최대 270일간 체류할 수 있는 트럼프 플래티넘카드, 기업이 미국 영주권을 받을 임직원을 지정할 수 있는 200만달러짜리 기업골드카드 신청도 받고 있다.
해당 정책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이민자에 대한 ‘재력 테스트’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 이후 지속적인 이민자 추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돈을 내면 가능하게 한 것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다. 골드카드로 인해 해외 독재자와 범죄자 등의 미국 입국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비당파적이민정책연구소(MPI)의 수석 정책 분석가 케이트 후퍼는 “과거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들을 끌어들이는 걸 목격해 왔다”며 “반복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투자자들의 실제 신원과 자금 출처를 추적하는 데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