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에서 일하는 라오스 출신 계절근로자 A씨는 5개월간 일해 받은 실수령 임금 900만원 가운데 절반가량을 브로커 비용으로 지출했다. A씨를 도운 브로커는 입국 전 송출 과정에서 서류 준비와 선발·출국 절차 등에 관여하며 법정 비용을 웃도는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외국인 근로자 B씨는 월급 180만원 중 비닐하우스 숙소비로 46만원을 지불한다고 밝혔다.
11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은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상당수가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에 살면서 불법 브로커에 농락당할 위험에 노출됐다. 계절근로자는 국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비영리 민간단체 등이 해외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근로자를 선발해 일정 기간 국내에 머물며 일하도록 하는 제도다.
인권침해 경험은 근로 계약서상 근무지와 실제 근무지가 다름(14.3%), 초과 임금 미지급(13.3%), 언어폭력(11.1%) 등의 순이었다. 특히 공공형 계절근로자의 경우 초과 임금 미지급(35.4%), 언어폭력(29.1%), 숙소비 추가 지불(22.0%), 근무지 다름(21.0%), 외출 금지(15.7%), 신체 폭력(7.3%) 등 다양한 인권침해에 노출됐다.
인권침해를 겪은 응답자에게 대응 여부를 물어본 결과, 87.5%가 ‘참는다’고 답했다. 또 ‘위급 상황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할 기관을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41.9%에 그쳤다.
고용주 126명을 대상으로 한 계절근로자 근무 조건 설문에서도 3명 중 1명 이상은 임시 가건물(22.8%)이나 고용주 거주지의 부속 숙소(15.8%)에 근로자들을 머무르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주택은 36.8%에 그쳤다. 계절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198만원이었는데, 이 중 숙박·식비 등 공제비용이 19만4000원에 달했다. 임금명세서를 발급하는 고용주도 절반가량(58.4%)에 그쳤다.
계절근로자 업무를 담당하는 시·군 공무원 34명에게 질문한 결과, 4명 가운데 1명(24.2%)은 브로커 등 중개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경기도 인권담당관과 농업정책과, 경기도농수산진흥원, 한양대학교 에리카산학협력단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도 관계자는 “계절근로자들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했다”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근로계약, 언어 접근성, 일터에서의 안전, 중개인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