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언어로 평화를 재단할 수는 없다 [종교칼럼]

요즘 통일교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논란이 커질수록 사실과 평가를 분리해 바라보는 태도가 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종교단체가 제기해 온 ‘평화 인프라’ 구상이 정치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논의는 쉽게 왜곡되거나 과잉 해석으로 흐르기 쉽다.

 

오늘 아침 한 라디오 대담에서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신흥·이단종교 연구가)가 제시한 통일교 및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해석은 바로 그 위험한 지점을 보여준다. 탁 교수는 한반도 평화서밋과 한일 해저터널을 통일교의 ‘숙원사업’으로 규정하면서, 그 추진 동기를 통일교 내부의 후계 구도와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로 해석했다. 나아가 정치권 접촉과 청탁으로 비칠 수 있는 무리한 접근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해석은 사안의 결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묶어 평화 비전의 성격을 권력 프레임으로 환원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의심’이라는 렌즈가 앞서면 평화를 향한 담론마저 권력의 산물로 보이기 쉽다.

 

탁 교수의 서사는 “한학자 총재가 후계 싸움에서 밀려 무리수를 두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나 통일교 내부의 현실을 외부에서 단정적으로 ‘열세’로 규정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해석을 기정사실처럼 유통시킬 위험이 있다. 자녀들이 각자의 길을 간다 해서 종교적 계승의 정통성이 자동으로 약화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 총재는 남은 제자들과 함께 문선명 총재의 뜻을 계승하며 평화 비전의 궤도를 이어오고 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신앙 공동체의 리더십을 권력 투쟁의 도식으로 환원할 때 종교의 내적 동력과 윤리적 지속성은 제대로 조명되기 어렵다.

 

한일 해저터널은 대형 토목공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길’은 언제나 소통과 화합의 상징이었다. 대륙과 대륙, 섬과 섬, 국가와 국가를 잇는 인프라는 전쟁의 단절을 평화의 연결로 바꾸는 문명적 장치다. 세계는 이미 그 사실을 경험했다. 일본의 세이칸 터널은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통로이자 산업과 문화 교류의 경로가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한 유러터널 역시 유럽 통합과 상호 의존을 강화하는 기반으로 기능해 왔다. 이들 해저터널은 단절을 넘어서는 연결의 상징이었다.

 

탁 교수는 한일 해저터널을 통일교 내부의 정통성과 주도권을 둘러싼 상징적 사업으로 해석했다. 해저터널이 지닌 근본적 성격, 곧 국가와 국가를 잇는 평화 인프라로서의 문명사적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해석이다. 후계 구도라는 내부 맥락만으로 이 구상을 설명하는 순간, ‘길’의 보편적 상징성과 공공성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탁 교수는 “이 정도 국가 프로젝트가 한 정치인으로 가능했겠느냐”는 문제 제기를 통해 정치 접촉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일 해저터널은 정부 간 합의, 국회 비준, 막대한 재정과 국제 금융, 기술·환경적 검증을 거쳐야 하는 초국가적 프로젝트다. 특정 종교나 개인, 일부 정치인의 영향력만으로 좌우될 수 없는 구조로 돼있는 것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만약 추진 과정에서 불법적 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은 개별 행위자의 책임으로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받아야 할 문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근거로 한일 해저터널이라는 평화 비전 전체를 ‘구조적 로비’나 ‘권력 투쟁의 산물’로 환원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 불법이 있다면 처벌의 대상은 행위이지, 평화를 위한 구상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종교단체가 인류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말하고, 정치권에 평화 인프라를 제안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것이 정치의 장에서 발화될 때 정치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정치적으로 보인다는 사실과 정치적 음모로 해석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종교의 언어로 평화를 말하는 행위를 곧바로 정치적 계산으로만 해석하는 태도는 통일교뿐만 아니라, 그동안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수행해 온 역할을 축소시킨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늘 전쟁과 분단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제시해 왔다. 그 상상력마저 권력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공론장의 빈곤만 초래할 뿐이다. 문 총재가 제창한 한일 터널, 베링해협 터널,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은 종교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각국의 종교지도자, 과학자, 정치지도자들로부터 공개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이를 모두 내부 주도권 경쟁의 부산물로만 설명하는 것은 편의적인 해석에 가깝다.

 

탁 교수는 대담 말미에서 종교 해산 문제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점만큼은 의미가 있다. 종교의 자유는 민주사회가 쉽게 훼손해서는 안 될 가치다. 이 원칙이 흔들릴 때 탁 교수의 말처럼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특정 종교를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