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투자 과열 논란인 'AI 거품론'에 대한 우려가 재점화하고 있다.
AI 관련 기업들이 막대한 설비 투자 때문에 자금 조달 부담이 큰 데다 성장세도 둔화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면서 AI 거품론이 재부상하는 분위기다. 보험 성격의 파생금융상품의 판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를 주도하는 미국 테크 그룹에 연계된 신용부도스와프(CDS)의 거래량이 올해 9월 초부터 최근까지 약 90%가 급증했다고 파생금융상품 청산기관 DTCC의 자료를 인용해 15일 보도했다.
미국 대형 채권투자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빅테크 기업이나 오라클·메타에 대한 CDS 포트폴리오를 활용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단일 종목 CDS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현 상황에서 헤지(위험 분산)를 꾀하고 자산을 보호하려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기술주 CDS 바스켓(상품 묶음)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거품론은 2022년 말 챗GPT의 등장으로 AI 붐이 시작될 때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빅테크들의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오라클은 지난주 발표한 2026회계연도 2분기(올해 9∼11월) 실적에서 클라우드 인프라(기반 시설) 매출과 클라우드 판매 매출이 다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회사채 매도 바람이 불었다.
오라클의 CDS 가격은 2009년 이래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고 FT는 전했다. 그만큼 오라클의 리스크에 대비하려는 수요가 대거 늘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AI 칩 업체 브로드컴 주가는 향후 제품 수주 잔고가 실망스럽다는 평가에 11∼12일 하루 사이 약 11.4% 급락했다.
AI 칩 세계 1위 엔비디아도 이런 AI 거품론 역풍을 피하지 못하고 지난 한주(8∼12일) 새 주가가 5.7% 빠졌다.
AI 기술주의 성장세가 둔화세를 보이는 것도 AI 거품론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 AI 산업은 폭발적 성장세가 이어진다는 예측을 토대로 주가가 오르고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인데, 이 믿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데이터를 인용해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등 미국 7대 기술주(매그니피센트 7)의 순이익 증가율이 내년 18%로 관측돼 최근 4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수익률 예측치보다 조금 더 좋은 수준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가 집계한 데이터를 보면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주주 환원 조처를 고려할 경우 내년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FCF) 상태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알파벳은 같은 해 대략 손익분기점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AI 거품론의 반론도 많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인터넷 기업 버블)과 비교하면 AI 종목들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평가)이 너무 부풀려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테크 종목 중심의 증시 지표인 나스닥 100 지수는 현재 예상 수익 대비 26배 수준에서 거래되는데, 이는 닷컴버블 때의 수치인 80배 이상과 비교해 훨씬 과열이 덜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 알파벳, MS 등 개별 대표 종목의 주가도 예상 수익 대비 30배 이하로, 지금의 AI 주목도를 고려할 때는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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