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감촉인
어둠을 만져보았어
내게 먼 해안이 생겼어
도톨도톨한 흑백 건반은
저녁부터 비를 되풀이하고 있어
희고 검은 손가락이
가늘어지면서 건드리는
빗방울은 블루
비와 물방울을 이해한다면
나는 투명해지는 거지
창문으로만 보이는 겨울비 때문에
뒤척이는 눈물 대신
나의 해안은 자꾸 길어진다네
이상한 하루였어
물이 나면서
내가 물,
무엇이든 서로가 되는 날이었어
서로를 포옹하는 날이었어
비 내리는 저녁 창밖을 내다보며 이 시를 읽는다. 미끄러지듯 자동차가 달리고 오토바이가 달리고 그 사이사이 비가 달린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퍽 “이상한” 속도로. 시인은 어둠 속의 빗방울을 “희고 검은 손가락이 가늘어지면서 건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빗소리는 금세 음악 같다. “흑백 건반”이 연주하는 이런 쓸쓸한 음악은 어쩐지 익숙하고, 밤새도록 몸을 뒤척이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빗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 사람의 뒷모습 같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뒤척이는 동안 그는 조금 울었을지도 모른다. 이따금 우리가 이불 속에 남몰래 슬픔을 감추어 두듯이.
‘물’이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물이라는 말이 문득 근사하게 다가온다. 서로가 된다는 말, 서로를 포옹한다는 말. 마치 슬픔이 슬픔을 어루만진다는 말처럼.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