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자립도 10%도 안 되는데…” 전북 일부 지자체 ‘민생지원금’ 지급에 논란

내년 새해를 앞두고 재정 여건이 열악한 전북 일부 기초자치단체가 민생지원금 명목의 지역화폐 지급을 결정하면서 재정 건전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정읍시가 소득·연령 구분 없이 전 시민에게 1인당 30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가 보편적 현금성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지역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읍시청사 전경.

정읍시는 내년 1월 19일부터 전 시민을 대상으로 1인당 3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정읍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시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시민들의 생활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예산 절감과 재정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읍시 관계자는 “올해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며 220억원을 절감하는 등 총 429억원의 여유 재원을 확보해 이 중 305억원을 지원금 재원으로 편성했다”고 말했다. 이학수 정읍시장은 “시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북 전체 재정 여건을 놓고 보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올해 당초 예산 기준 정읍시의 재정자주도는 56.35%로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78위를 기록했지만, 재정자립도는 9.69%로 182위에 머물렀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 재원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낮을수록 중앙 정부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전북도와 14개 시군 전체 재정자립도는 23.51%로 지난해보다 0.3%포인트 하락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도내 14개 시·군 또한 전주시만 재정자립도 21.73%로 20%대를 유지했을 뿐, 나머지 시·군은 모두 20% 미만이다. 완주군 17.67%, 군산시 16.11%, 익산시 14.73%, 김제시 10.02% 정도다. 게다가 정읍시를 비롯해 고창군(9.39%), 남원시(8.68%), 부안군(8.23%), 진안군(6.69%) 등 9개 시·군은 재정자립도가 10%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재정자주도 역시 전북도 본청이 38.11%로 전년 대비 3.86%포인트 하락해 도와 시·군 전반의 재정 자율성이 약화되고 있다. 재정자립도와 재정자주도가 모두 낮다는 것은 중앙정부 지원 재원 없이는 지방재정 운영이 어려운 구조임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정읍시를 비롯해 진안군, 남원시, 김제시 등은 앞서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도 1인당 20만∼50만원을 ‘민생안정지원금’, ‘일상회복지원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이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전북 평균(23.51%)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를 두고 다른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가 결국 국비와 도비, 즉 다른 지역 주민들의 세금에 의존해 지원금을 뿌리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반면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자체 주민들 사이에서는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지역은 왜 지원금 대상에서 빠지느냐”는 반발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보편적 지원금 정책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행정’ 또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장이 현금성 지원을 통해 유권자 환심을 사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속에서 취약계층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보편적 현금 지급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지방재정의 구조적 취약성을 해소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지원금 정책은 지역 간 갈등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