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중국 베이징에서 ‘K팝 콘서트’ 개최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지난 11월 한·중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양국 간에 문화 교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정부는 전임 윤석열정부 당시 극도의 경색 국면으로 치달았던 한·중 관계를 회복하고 경제 및 안보 분야의 협력까지 예고했고,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일본과 대만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중요한 시점이다.
중국은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관광, 교육, 문화·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베이징에서 K팝 콘서트 개최는 한국과 교류를 확대하겠다는 상징성이 크다. 지난달 하순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일본 유명 가수 하마사키 아유미의 콘서트가 취소됐다. 또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 테마곡을 부른 일본 가수 오쓰키 마키가 상하이에서 열린 행사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다 강제로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다.
베이징에서 열리는 K팝 콘서트는 문화 교류를 통한 양국의 관계 회복을 보여주는 대형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계산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회복을 통한 동북아의 중재자로 나서겠다는 이재명정부의 구상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중국 정부가 한한령(한류제한령) 조치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만큼 콘서트가 성사될 경우 자연스럽게 한한령 완화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문화 관련 업계에서는 한한령 완화 등으로 중국 시장이 재개방되면 큰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상황을 주시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계기 국빈 방문 일정 중 수차례 문화 분야 교류와 관련한 공감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지난달 1일 한·중 정상회담 뒤 국빈만찬 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하면서 “이 대통령, 시 주석과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시 주석이 베이징에서 대규모 공연을 하자는 제안에 호응해서 왕이 외교부장을 불러 지시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면서 “한한령 해제를 넘어 본격적인 K문화 진출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아닐까 기대한다”고 전한 바 있다.
박 위원장도 국빈만찬 뒤 SNS를 통해 “시 주석을 만나 뵙고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경청해 주시고 좋은 말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대중문화를 통해 양국의 국민이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길 기원한다”고 적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중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문화에 대한 교류·협력을 많이 하자는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에이펙 정상회의 환영 만찬 뒤 ‘나비, 함께 날다(Journey of Butterfly: Together, We Fly)’를 주제로 한 문화 공연을 함께 관람하고, 공연에 등장한 로봇 나비를 주제로 친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공연에 등장한 나비가 차기 에이펙 정상회의 개최지인 중국 선전까지 날아와 노래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사실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 한한령은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비공식적으로 이뤄졌다. 한국 대중가수들은 2016년 이후 중국 내 공연 허가를 받지 못했거나, 공연 허가를 받더라도 이후 직전 단계에서 취소됐다.
대표적으로 조수미가 2017년 2월 베이징·상하이·광저우 순회공연을 앞두고 중국 측으로부터 공연 취소 통보를 받았고, 이후 수년간 중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인디 록밴드 세이수미가 베이징 공연 허가를 받았다가 약 한 달 만에 허가가 취소됐다. 지난 9월에는 중국 하이난성 싼야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5 드림콘서트’가 공연 2주를 앞두고 소속사들에 취소 통보가 가면서 대형 K팝 합동공연이 또다시 무산됐다.
한한령 기간 K팝 스타들은 공연 대신 ‘노래 없는 팬 미팅·팬 사인회’ 형식으로 중국팬을 만났다. 김재중, 태민, 솔라 등 가수들은 토크·게임·포토타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