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모적인 역사 논쟁, 정치는 빠지고 학계에 맡겨야

‘4·3’ 관련 李 언급으로 논란 가열
정부마다 역사로 국민 갈라치기
진상조사는 화해의 발판 되어야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사건’ 수습에 투입됐던 조선경비대(국군 전신)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하면서 역사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4·3사건 진압 과정에서 부하에게 암살당한 박 대령의 행적을 놓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노무현정부 시절 나온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박 대령의 작전이 대규모 희생을 초래했다고 평가했으나, 이와 상반된 증언도 있다고 명시했다. 입산한 주민들을 남로당 무장 세력과 떼어놓는 선무 작업에 주력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런 논쟁적 사안에 정치가 개입하면 국민은 편을 갈라 싸우게 된다. 국민 통합에 나서야 할 대통령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여순사건’ 77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에서 남로당원 조선경비대원들이 야기한 무장반란을 ‘부당한 명령에 맞선 항명’으로 평가해 논란을 빚었다. 4·3사건과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진상 보고서 결론대로, 두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막기 위한 남로당 세력의 봉기와 반란으로 촉발됐지만, 강경 작전을 펼친 군경의 책임도 작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4·3사건 진상조사에 즈음해 “비단 그 희생자와 유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여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 데 그 뜻이 있는 것”이라는 발표문을 냈다. 그래야만 대립과 분열을 끝내고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해법이 있을 수 없다.



한국 현대사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전쟁과 분단, 독재의 시기를 거쳤지만 끝내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승리의 역사다. 그런데도 정부마다 역사 논쟁을 야기하며 편 가르기에 나섰다. 보수 정부는 ‘건국절’ 제정과 ‘국정교과서’ 채택 소동을 일으키고, 진보정부는 친일파 청산을 외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문제 삼았다. 이런 소모적인 역사 논쟁은 멈춰야 한다.

헌법 질서 파괴와 민간인 학살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고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의 가치는 진영을 넘어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되, 처벌과 화해의 균형이 필요하다. 박 대령에 대한 평가도 학계에 맡기고 정치는 빠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