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당의 가장 극적인 위기 극복 사례를 꼽는다면, 2004년 한나라당의 ‘천막당사’가 떠오른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데 이어 불법 대선자금 수수 정황까지 드러나 홍역을 치렀다. 이른바 ‘차떼기 당’이란 오명을 벗지 못한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겹쳐 당 지지율은 한 자릿수까지 곤두박질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7대 총선을 3주 앞둔 시점에 여의도 공터에 천막을 치고 당사 현판까지 옮기는 초강수를 택했다. 당초 50석도 건지기 어려울 것 같다던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으며 부활에 성공했다.
천막당사 전략이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3년 8월에는 민주당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규명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렸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때까지 무소의 뿔처럼 가겠다”고 밝힌 당시 김한길 대표는 추석 연휴에도 동료 의원, 당직자들과 천막당사에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민주당은 원내·장외투쟁을 병행하며 100일 넘게 천막당사를 유지했지만, 결국 큰 소득 없이 회군했다. 정치권에서는 비노(비노무현) 인사인 김 대표가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주축이 된 당내 강경파에 떠밀려 무리하게 강경 투쟁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2019년 11월에는 당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발하며 청와대 앞 천막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황 대표가 8일 만에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단식은 끝냈지만, 천막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는 등 장외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공수처 설치법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저지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황 대표는 천막 농성을 친황(친황교안) 체제 구축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다. 당무에 복귀하자마자 사무총장과 비서실장, 여의도연구원장 등 핵심 당직자들을 측근 인사로 교체했고, 황 대표는 이들과 함께 이듬해 21대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비례대표를 합쳐 103석을 얻는 데 그쳐 당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