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잠든 사이, 환경미화원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75ℓ 쓰레기봉투를 들어 올리는 팔뚝에 핏줄이 선다. 어깨엔 그 무게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청소차는 곡예하듯 좁은 골목길을 질주한다. 이들은 시민이 출근하기 전, 작업을 마치기 위해 늘 시간에 쫓겼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환경미화원은 시민들이 매일 배출하는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일주일에 6번 일터로 나갔다. 하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시민들의 시선을 피한 심야 시간, 빠른 수거를 위해 뒷발판에 매달리다 벌어지는 사고들. 환경미화원들은 그렇게 다치고, 때로는 목숨도 잃었다.
환경미화원은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노동자’로 불리지만, 이들의 안전은 ‘비용’, ‘민원’, ‘무관심’의 벽 앞에서 늘 뒷순위로 밀려났다. 위험은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죽음은 불운한 사고로 처리됐다. 왜 이렇게 많은 사고가 반복되는가. 이 사회는 필수노동을 어떤 조건에서 유지해왔는가. 시리즈 ‘당신이 잠든 사이’는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5회 시리즈 마지막 회차엔 우리가 잠든 사이 이어지는 이 노동이 더는 다치고 죽는 일로 끝나지 않도록 사회가 어떻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를 살펴본다.
환경미화원의 산업재해는 종종 ‘운이 나쁜 사고’로 치부된다. 현장을 들여다보면, 사고 이전 단계에서 이미 위험이 누적되고, 그 위험을 견디기 어려운 노동자는 현장을 떠나는 구조가 존재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재해 통계만으로는 노동의 위험성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산재를 사고가 아닌 예방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온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8일 녹색병원 7층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만난 허승무 인간공학팀장은 “위험이 적어서 다치지 않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이 먼저 떠난 결과다”라고 말했다. 허 팀장은 지난해 서울 금천구와 함께 환경미화원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부담 요인 조사를 진행했다.
허 팀장은 이 같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크게 공학적 개선과 관리적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저상형 청소차 도입, 수거 도구 개선, 허리 부담을 줄이는 웨어러블 기기 활용 등이 공학적 개선에 해당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허 팀장은 “공학적 개선은 효과가 분명하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작업 구역을 순환하거나 인력 배치를 조정하는 등 관리적 개선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늘려야 하는 해결 방식이다. 허 팀장은 “청소차 도입, 주간 전환 등 문제를 조각조각 해결하려 하기보다, 전체 위험을 한 번에 정리하고 어느 단계에서 누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드는 것이다. 허 팀장은 “법과 제도는 정부가, 현장의 안전 책임은 사업장이, 관리와 예산은 지자체가 맡고, 시민 역시 논의의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팀장은 환경미화원과 소방관을 예로 들며, 사회가 ‘힘든 일’로 분류해온 직종들의 공통점을 짚었다. 바로 사회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라는 점이다. 허 팀장은 “공공 영역이라면 선도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겨울철엔 음식물 쓰레기가 얼어붙어 적재함에서 잘 안 빠져요. 그걸 퍼내려 차 위로 올라가 삽질을 하다 미끄러졌죠.”
서울 금천구에서 13년째 생활폐기물을 수거해 온 환경미화원 백수현 전국민주일반노조 금천구 환경지회장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회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8일 시흥동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현장의 가장 큰 고충으로 ‘무릎과 허리를 갉아먹는 상황’을 꼽았다.
백 지회장은 “금천은 3.5t이나 5t 트럭을 주로 쓰는데, 조수석이 워낙 높아 수시로 오르내릴 때마다 무릎과 고관절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다”며 “동료 중 멀쩡히 걸어 다니는 사람이 드물 정도”라고 토로했다. 그는 “작업자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저상형 청소차’ 도입이 시급하지만, 예산과 현장 여건을 이유로 보급이 더디다”고 지적했다.
야간에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의 숙원인 ‘주간 근무 전환’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전국 생활폐기물 수거 환경미화원 약 3만명 중 절반가량이 야간 노동을 한다. 서울은 25개 자치구 가운데 2곳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야간 근무다. 야간 작업은 시야 확보가 어려워 주간 대비 산재율이 높고, 밤낮이 뒤바뀐 생활은 건강에 치명적이다. 백 지회장은 “2년 전 금천구에서 한 달간 주간 근무를 시범 운영했을 때 사고율이 현저히 줄고 노동자 만족도도 높았지만, 결국 ‘미관을 해친다’, ‘출근길 교통이 막힌다’는 민원에 밀려 무산됐다”고 했다. 당시 주민 여론조사에서 주간 수거에 대해 찬성 49%, 반대 50%로 의견이 팽팽했다.
시민들의 배출 문화 개선도 호소했다. 백 지회장은 “밤에 일하다 보면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쓰레기 봉투 속에 깨진 유리, 칼날이 아무렇게나 들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심지어 재활용을 정리하다가 피자 박스를 고정하는 플라스틱 삼발이가 신발을 뚫고 들어와 발을 크게 다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러한 사고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백 지회장은 “용역 계약 시 청소를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과 장비로 원가를 짜는데, 현장에선 이것이 ‘적정 기준’으로 둔갑한다”며 “인력이 부족하니 시간에 쫓기듯 일하게 되고, 이는 곧 안전사고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대체인력이 없어서 연차도 제대로 못 쓰는 상황도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상당수 환경미화원이 영세한 민간 대행업체 소속이라 안전 투자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라며 “구청이 계약 단계에서부터 안전 비용 투자와 노동자 건강 관리 실적을 평가 항목에 넣어 강력하게 반영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은 누군가의 선의가 아닌, 정확한 비용 산정과 시스템 변화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환경미화원 안전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3인 1조 작업’과 ‘주간 근무’ 원칙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이 두가지 원칙만 제대로 지켜져도 상당수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라고 둔 ‘예외 조항’이 관행처럼 굳어져 원칙이 유명무실해진다. 보다 촘촘한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17일 세종시 기후에너지환경부 별관 청사에서 만난 김고응 자원순환국장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작업 안전 원칙을 지킬 수 있게끔 유도해 나가겠다”며 “내년 환경미화원 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기존 원칙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기후부는 환경미화원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 중이다. 특히 작업복 변화에 중점을 둔 ‘환경미화원 작업 안전 가이드라인’ 개정을 앞두고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국장은 “기존 안전모가 무겁고 불편해 작업자들이 착용을 꺼려왔고 작업조끼도 야광 반사 기능이 금세 떨어져 안전상 위험이 컸다”며 “가벼운 안전모를 공식 장비로 의무화하고 발광다이오드(LED)가 내장된 작업조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청소차가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잘 보이도록 차량 뒤에 빛을 반사하는 안내판을 달 수 있는지를 두고도 국토교통부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정부가 ‘3인 1조’ 작업 등 원칙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대책으로 거론되지만 김 국장은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모든 차량을) 3인 1조로 운영하려면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주간 쓰레기 수거로 전환할 경우 교통 혼잡이나 주민 민원 등으로 업무 난도가 오히려 높아진다”며 “지자체가 부담을 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마땅한 대책 없이 이행하기 어려운 의무만 강제하면 오히려 정책과 엇박자가 날 수 있다”고 했다.
환경미화원의 안전은 비용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기후부가 국비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자 예산 편성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재정당국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 국장은 “전국 228개 기초 자치단체마다 저상형 차량 4대를 도입하고 차량 1대 당 3명씩 일할 인력을 지원하고자 총 1500억원을 편성했다”며 “지난 2년 동안 재정당국에 예산을 요청했지만 지자체 사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김 국장은 시민들의 의식 개선을 함께 당부했다. 그는 “쓰레기 수거 현장에서 ‘교통을 방해한다’, ‘시끄럽다’는 민원이 늘어나는 걸 보면, 여전히 많은 주민이 미화원을 단순히 ‘쓰레기 치우는 사람’ 정도로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청소 업무는 공공서비스다. 쓰레기 또한 우리가 버린 것이니 환경미화원들의 노고를 넓은 마음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