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남정훈 기자] 2010년부터 15년 간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홈(Home) 구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니까. 집처럼 드나들던 곳에 오랜만에, 약 8개월 만에 왔다. 다만 모든 게 달라졌다. 라커룸도, 몸 푸는 코트도. 그래도 생각보다 덤덤했다. 프로의 세계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여자 프로배구 도로공사의 22년차 아포짓 스파이커 황연주(39) 얘기다.
황연주는 18일 2025~2026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현대건설과의 ‘원정’ 경기를 위해 수원체육관에 왔다. 2024~2025시즌을 마친 뒤 2010년부터 입어왔던 현대건설 유니폼을 벗고 도로공사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처음 수원체육관에 온 것이었다. 올 시즌 도로공사와 현대건설의 1,2라운드 맞대결은 모두 김천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2005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흥국생명의 지명을 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한 황연주는 2009~2010시즌을 마친 뒤 첫 FA 자격을 얻어 현대건설로 이적했다. 당시 ‘연봉퀸’의 대우를 받으며 현대건설로 이적했던 황연주는 이후 오랜 기간 현대건설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비록 데뷔팀은 아니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고 세 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2010~2011, 2015~2016, 2023~2024)도 차지했다.
그러나 2024~2025시즌을 마친 뒤 황연주는 현대건설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코치직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데뷔 때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로 코트 위에선 여전히 위력적인 공격력을 뽐내고 있는 황연주는 현역 연장의 의사가 강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황연주의 사정을 알게 된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가 이를 팀에 알렸고, 도로공사에 입단하게 됐다. 현대건설도 황연주를 조건없이 방출하며 새로운 도전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15년 만에 입게 된 새로운 유니폼. 황연주는 코트보다는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많다. 지난 두 시즌 동안 현대건설에서 같이 뛰었던 모마(카메룬)가 올 시즌 도로공사의 외국인 선수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엔 현대건설이 외국인 선수를 아웃사이드 히터로 뽑게 할 정도였지만, 이젠 그럴 순 없다. 그래도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세터가 전위로 올라올 때 교체해 들어가는 ‘더블 스위치’로 코트를 밟아 공격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날도 3세트에 교체로 들어가 공격 득점 1개와 유효 블로킹 2개를 기록했다. 오랜만에 수원체육관을 찾았지만, 결과는 도로공사의 1-3 패배였다.
경기 뒤 ‘원정’ 라커룸으로 향하던 황연주를 만났다. 오랜만에 수원체육관에 온 소회를 묻자 황연주는 “처음으로 원정 라커룸을 쓰고, 경기 전 몸도 오른쪽 코트에서 푸니까 뭔가 어색하긴 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는 덤덤하네요”라며 웃었다.
평소 눈물이 많아 ‘찡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황연주에게 ‘의외다. 되게 감상적인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MBTI가 T냐’라고 묻자 “아니요. 저 F인 거 아시잖아요. 근데 이럴 땐 업무적인 ‘T’스러운 면이 나오네요”라고 답했다.
갑작스런 김천행에 황연주는 약 10여년 만에 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 현대건설 시절, 처음엔 숙소생활을 하다가 10여년 전부턴 숙소 근처에 집을 구해 살며 출퇴근했던 황연주였다. 그는 “오랜만에 숙소생활을 하다보니 편한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네요”라면서 “숙소에서 식사도 다 해결할 수 있고, 운동하기에도 편하긴 해요. 근데 아무래도 숙소 생활을 하게 되면 출입 통제도 있잖아요. 이런 건 오랜만에 경험하니까 어색하긴 하네요”라고 답했다.
올 시즌 모마와 황연주가 새로이 가세한 도로공사(승점 35, 13승3패)는 승승장구하며 선두에 올라있다. 비록 이날 2위 현대건설(승점 32, 10승6패)에게 승점 3을 허용해 승점 차가 3까지 좁혀졌지만, 여전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올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건설을 만날 수도 있겠다’라고 묻자 “그러게요. 확실히 최근에 현대건설이 좋아졌더라고요. 오늘도 그렇고. 챔프전에서 현대건설을 만나게 된다면 그땐 또 남다른 감회가 들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현역 연장을 위해 새로운 둥지를 찾아나선 황연주의 몸 상태는 문제 없다. 비록 제한적인 롤이지만, 최선을 다 하고 있는 황연주다. “언제까지 뛸 진 모르겠지만, 그게 1~2년이 될지라도 현역일 때는 최선을 다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