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구 증가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한국을 ‘반면교사’로 지목해 눈길을 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시작한 전쟁이 4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다수의 젊은 남성이 전장에서 숨지거나 다침에 따라 인구 위기 의식이 커진 상태다.
19일(현지시간)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푸틴은 이날 새해를 앞두고 연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러시아의 출산율에 관해 설명하던 중 한국 사례를 들었다. 구체적으로 푸틴은 “경제 규모가 큰 대부분의 나라가 출산율 감소 문제를 겪는데, 일부 국가는 상황이 더욱 극적”이라며 “일본의 출산율은 0.8%, 한국은 0.7%”라고 말했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가임 여성 1명당 0.748명이다.
러시아 인구는 현재 약 1억4610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옛 소련 산하 자치공화국 시절이던 1990년(1억4760만)과 비교해 150만명가량 감소한 수치다. 2024년 기준 러시아의 합계 출산율은 가임 여성 1명당 1.4명으로 한국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다만 1.4명도 지금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2.1명에는 크게 못 미친다. 러시아의 합계 출산율은 지난 2015년 1.78명을 기록한 이래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푸틴은 인구 위기 문제의 해법으로 “자녀를 갖는 것이 유행과 트렌드가 되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책 당국을 향해 “사람들이 부모가 되는 것의 기쁨을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푸틴의 인구 중요성 강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는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5선에 성공한 뒤 새로운 국정 과제의 하나로 “2030년까지 합계 출산율을 1.6명으로 늘린다”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푸틴은 공개 석상에서 “국가 생존을 위해 최소 2명의 자녀를, 또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3명 이상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러시아 국민은 대가족을 삶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등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와 의회는 출산율 증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과 각종 미디어 및 광고 등에서 자녀 없는 삶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것을 아예 법률로 금지했다. 낙태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물론이고 성소수자들의 활동에도 엄격한 규제를 가한다.
반면 다자녀 가정에는 무상 급식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10명 이상 자녀를 낳은 여성에겐 ‘영웅 어머니’ 훈장을 수여한다. 청소년들의 낙태 시도 차단을 위해 임신한 청소년에게 1200달러(약 165만원)를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러시아 의회에선 자녀 수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편 푸틴은 이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에 대해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는 평화적 수단으로 분쟁을 끝내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적은 모든 방향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말로 러시아군이 우세를 점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전쟁 때문에 생겨나는 사상자에 관해선 입을 다물면서 인구 감소만 걱정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