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책무 떠넘겨 ‘셀프 점검’”…금감원, 책무구조도 운영실태 지적

올해 1월부터 도입한 금융권 ‘책무구조도’ 시행 결과 대표이사(CEO)의 책임을 하위 임원에게 위임해 ‘셀프 점검’하게 하거나 형식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하는 등 미흡한 점이 드러났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의 모습. 뉴시스

금융감독원은 21일 책무구조도를 도입해 운영 중인 금융지주와 은행 40개사의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점검은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모범사례’와 ‘보완 필요 사항’으로 나뉘어 공개됐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에 떠넘기지 못하도록 주요 업무의 최종 책임자를 사전에 특정해두는 제도다. 대규모 횡령이나 불완전 판매 등 금융사고 발생 시 경영진이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을 막기 위한 취지로, 개정된 지배구조법에 따라 올해 1월부터 금융지주와 은행을 대상으로 의무화했다.

 

금감원은 우선 보완 필요 사항으로 ‘CEO 총괄 관리 의무’의 부적절한 위임을 지적했다.

 

대다수 금융회사는 대표이사가 총괄 관리의무를 소관 임원에게 위임하고 그 이행 결과를 보고받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임원은 자신이 이행한 관리조치를 셀프점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금감원은 CEO의 총괄 관리조치를 전담해 보좌할 조직이나 준법감시 부서를 두는 등 총괄 관리의무 위임의 근거나 대상,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내규 없이 책무를 위임해 사고 발생 시 임원에게만 책임을 미루는 책임 전가 우려도 제기됐다. 해당 임원이 수행한 업무가 CEO로부터 위임받은 것인지, 애초 본인의 고유 관리의무를 이행한 것인지 구분이 모호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부통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이사회와 내부통제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점도 개선 과제로 꼽혔다. 이사회 안건을 분석한 결과 구체적인 논의 없이 각 임원의 이행 실적을 단순 나열식으로 보고받고 있던 것이다. 임직원이 동일·유사 업무를 장기간 수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실효성 검토 없이 기계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도의 취지를 살려 내부통제를 강화한 모범사례도 다수 소개됐다. A사는 금융당국의 제재운영지침을 자체적으로 반영해 CEO가 직접 챙겨야 할 위기 신호의 범위를 스스로 넓혔다. B사는 영업수익 등 재무적 지표 외에 비예금 상품의 판매한도 달성 여부 등 비재무적 지표까지 점검 항목에 포함해 리스크 감지 능력을 높였다.

 

C사는 과거 발생했던 대형 금융사고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가동해 현재 책임 체계의 빈틈을 점검했다. 검사부서와 현업부서가 사고 정보를 공유하는 ‘금융사고 정밀 분석제도’를 도입해 재발 방지에 나선 사례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은 “제도 시행 후 대표이사의 역할이 명확해지는 등 긍정적 변화가 관찰됐다”면서도 “실효성 있는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초기단계에 머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