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국민연금 동원해도 환율이 뛰는 이유

외환당국 마땅한 고환율 대응책 부재 방증
단기 처방 남발하지 말고 기초체력 키워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해 달러당 1480원을 넘나들자 외환당국이 여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경제부총리가 국민연금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의 조화를 위한 ‘뉴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8일에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외환건전성 제도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방안을 발표했다.

19일에는 한국은행이 작년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 만에 임시 금융통화위원회까지 개최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좀처럼 하락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외환당국이 고환율에 대응할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석병훈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근 외환당국이 발표한 일련의 정책들은 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를 억제하는 동시에 공급을 늘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해외자산 투자를 위해 필요한 달러를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에서 빌려오게 하는 통화스와프를 내년 말까지 연장한 것도 외환시장에서 국민연금의 달러 수요를 줄인다.



국민연금이 선물환 등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미래에 달러를 파는 포지션을 취하도록 하는 전략적 환 헤지, 6개월간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외화를 빌려올 때 내는 외환건전성부담금을 면제하고, 금융기관이 한국은행에 맡기는 외화예금의 법정 지급준비금을 초과하는 달러에 이자를 지급하는 정책 등은 해외 외화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게 해 달러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추세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지속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여러 부작용을 낳을 위험성도 크다.

원·달러 환율은 장기적으로 한국과 미국 경제 기초체력의 차이에 의해 변화한다. 양국 경제의 기초체력과 관련된 지표인 광의 통화량 M2의 증가율은 한국 M2에만 포함된 수익증권을 제외해도 지난 9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한국 5.4%, 미국 4.5%로 원화 가치 하락을 시사한다. 또 다른 지표인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 전망에 따르면 올해 한국 1.0%, 미국 1.9%로 미국이 높아 역시 원화 가치 하락을 나타낸다. 이에 더해 한·미 관세 협상의 결과로 기업과 정부 주도하에 향후 5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가 예고되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미국 대비 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한시적으로 외환건전성 관련 규제를 완화해도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달러를 내놓지 않고 오히려 더 매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은행의 전망에 따르면 올해뿐만 아니라 2027년까지 미국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아 미국 주가가 더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서학개미들 역시 증권사들이 해외투자 마케팅을 중단해도 미국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경우, 국민연금은 전략적 환 헤지와 한국은행과의 통화스와프로 인해 기금 운용에서의 원화 환산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노후 대비를 위한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을 하락시킬 위험이 있다. 외환당국이 추진하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4자 협의체 기반의 뉴 프레임워크는 결국 국민연금과 다른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이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개입할 길을 터줌으로써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희생하게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외환당국은 임기응변식 단기 처방을 남발하지 말고,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게 구두 개입 등을 통해 관리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투자를 늘리기 위한 법인세 감면 및 규제 혁파와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같은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석병훈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