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가격 부담 없이 선택되던 수입산 소고기가 더 이상 ‘대안재’가 아니다.
고환율 장기화로 수입 원가가 급등하면서 미국산·호주산 소고기 가격이 빠르게 치솟았고, 소비자 체감상 가격대는 한우와의 격차가 눈에 띄게 좁혀졌다. 환율 변수가 식탁 물가를 직접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환율이 끌어올린 수입 소고기 값
2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초 100g당 4200원 수준이던 미국산 냉장 갈비살의 국내 원료가격은 이달 중순부터 약 17% 오른 490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호주산은 상승폭이 더 가팔라 35% 뛰며 5900원대에 육박했다.
주목할 점은 국제 소고기 시세가 큰 폭으로 오르지 않았음에도 국내 가격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환율 충격의 전형적인 사례”로 본다.
달러 기준 가격이 안정돼 있더라도 원·달러 환율이 높으면 국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입산이 싸다’는 공식 붕괴
유통업계에 따르면 환율 변화는 수입산 가격에 즉각 반영되는 반면, 한우 가격은 사육 기간과 유통 구조상 변동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이 때문에 환율이 급등할 경우 수입산과 한우의 가격 격차는 빠르게 좁혀진다.
실제 대형마트 현장에서는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조금 더 보태서 한우를 살까”라는 고민이 늘었다는 것은 가격 기준선 자체가 달라졌다는 신호다.
수입산이 ‘확실히 싼 선택지’라는 인식이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체감물가’ 자극하는 상징적 품목
소고기는 먹거리 가운데서도 체감도가 높은 품목이다. 비교 대상이 분명해 가격 변화가 심리적으로 크게 인식된다.
소비자물가 분석가들은 “가격 차가 줄어드는 순간, 통계보다 훨씬 큰 물가 상승 압박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한다.
고환율의 영향은 소고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름, 가공식품 등 달러 의존도가 높은 품목 전반으로 생활물가의 불안정성이 확산되고 있다.
하루 세 끼 식탁에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변수가 환율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 “소비 위축의 그늘…환율이 만든 새로운 기준선”
축산업계는 수입산 가격 상승이 한우에 상대적 경쟁력을 부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보면서도, 전반적인 소비 위축을 더 큰 문제로 꼽는다.
가격이 비슷해졌다고 소비가 늘기보다는, 아예 구매를 미루거나 소비 빈도를 줄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 트렌드 측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가격 차이가 줄어든 상황에서는 브랜드 신뢰도, 원산지, 신선도 같은 비가격 요소의 영향력이 커진다.
‘싼 고기’를 중심으로 한 소비 공식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정부는 수입 먹거리 물가 급등 우려에 따라 수급 상황과 유통 구조 전반을 점검할 방침이다.
유류세 인하 연장 검토 등은 물류비 부담을 일부 완충할 수 있지만, 환율 자체를 낮추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에 머무는 현 상황이 쉽게 바뀌기 어렵다고 본다. 단기 조정 가능성은 있어도 과거처럼 낮은 환율 환경으로의 복귀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전망이다.
이 경우 연말·연초를 거치며 수입 축산물과 가공식품 가격에 추가 인상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고환율은 소비자 선택의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
‘수입산은 싸다’는 공식이 무너지면서, 가격만으로 결정되던 소비는 품질과 신뢰를 함께 따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 한, 이 변화는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