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감원 퇴직자들 재취업 ‘로펌’↓ ‘가상자산 ’↑

최근 5년간 선호 기업 변화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 본격 가시화
규제대응 역량 갖춘 인사 수요 늘어
금융당국 출신 ‘전관 영입’ 경쟁 확산

가상자산에 최근 5년 새 16명 이동
로펌은 매년 감소세… 2025년 9명 불과

재취업 심사 승인율 여전히 90% 상회
“심사 제도 실효 거두지 못해” 지적도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의 재취업 대상이 로펌 중심에서 가상자산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가시화하면서 규제 대응 역량을 갖춘 당국 출신 인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 퇴직자의 재취업 심사 승인율은 90%를 웃돌아 취업심사 제도가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게티이미지뱅크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재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4급 이상 금감원 퇴직자의 가상자산 업종 재취업자 수가 최근 2년 새 급증했다. 매해 1∼2명 수준이던 가상자산 취업자는 지난해 5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11월까지 8명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가상자산 업계로 이직한 16명은 양대 거래소인 두나무(업비트·9명)와 빗썸(7명)에 집중됐다. 같은 기간 금융위 퇴직자 중 가상자산 업체로 재취업한 사례는 없었다.

금감원 출신들의 거래소행은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된 흐름과 무관치 않다. 특히 지난해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고 업계가 본격적인 규제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전관 영입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평가다. 금융당국의 감독 기조를 잘 아는 퇴직자를 영입해 사법 리스크를 줄이고 대관 업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상자산 발행·공시 규제 등을 담은 가상자산법 2단계 입법(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이어지면서 선제적 리스크 관리 차원의 당국 출신 영입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입법이 본격화하면서 당국의 검사 눈높이가 제도권 금융회사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며 “내부통제 시스템 정비를 위해 당국 출신 전문가 영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금감원 퇴직자가 가장 많이 재취업한 업종은 법무법인(로펌)으로 총 56명이 자리를 옮겼으나, 최근 연간 이직자 수는 감소하는 추세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13∼14명 수준을 유지하던 로펌 재취업자는 지난해 7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9명을 기록하며 가상자산 업계 이직자(8명)와 격차가 1명까지 좁혀졌다.

이외에도 금융협회나 연구원(25명), 일반기업(21명), 핀테크·IT(17명) 등이 금감원 퇴직자들의 주요 재취업처로 꼽혔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퇴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의 업무와 재취업 예정 기관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경우 최대 3년간 취업을 제한한다. 다만 최근 5년간 금감원 퇴직자 재취업 심사 227건 중 91.2%인 207건이 승인 또는 취업 가능 결정을 받았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 퇴직자들의 재취업 문턱도 낮았다. 같은 기간 금융위 퇴직자 심사 28건 중 취업 제한이나 불승인은 단 2건에 그쳤고, 92.9%(26건)가 심사를 통과했다. 2021년과 2023년, 올해는 심사 대상자 전원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피감기관들이 당국 출신 인사를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영입 경쟁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최근 쿠팡 등 유통·빅테크 기업까지 대관 조직 강화를 위해 금융당국 출신 영입에 공을 들이면서 전관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뉴시스

피감기관으로의 재취업 관행을 두고 경실련은 “관피아가 우리 사회에 여러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근절할 수 있는 법제도 개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취업심사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