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올해 순이익 시장 전망치는 지난해(16조5268억원)보다 10% 넘게 늘어난 18조5454억원으로, 2년 연속 사상 최대치 경신이 유력하다. 전년보다 수수료를 비롯한 비이자이익을 크게 늘리긴 했으나 여전히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막대한 이자를 손쉽게 번다는 비판이 거세다. 기업이나 자영업자를 지원해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생산적 금융’이나 저신용자 등을 대상으로 한 ‘포용금융’엔 소홀했다는 쓴소리도 쏟아진다.
2000년대 초반 지배주주가 없는 금융지주 체제 전환 후 혁신과 거리가 먼 구태의연한 영업행태에 주력해온 배경에는 ‘그들만의 리그’라 불리는 패거리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한 업무보고에서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일갈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계식 논설위원
그간 경영 승계 과정의 불투명성, 이와 연계된 최고경영자(CEO)의 장기 연임은 금융지주 지배구조 논란의 정점으로 지목돼 왔다. CEO 연임은 기본이고 3연임도 드물지 않았다. CEO가 친분 있는 사외이사들을 이사회로 들여 ‘셀프 연임’을 꾀한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CEO와 이사진이 장기간 임기를 같이하면서 이사회의 독립성이 저하됐다는 우려도 뒤따랐다. 이사회가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하면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 훼손은 불가피하다. 금융지주가 지배구조 논란 해소에 보다 힘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2023년 12월 ‘은행 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을 도입한 바 있다. 덕분에 금융지주가 CEO 상시 후보군 관리·육성부터 최종 후보자 선정까지 경영승계 절차를 구체화·문서화하는 한편 현 CEO의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부터 절차를 시작하는 내규를 마련하는 등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선진적인 지배구조 정착까지는 갈 길이 멀다. 승계절차 단계별 최소 검토 기간(2주∼1개월)을 정한 금융지주나 은행은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현 회장이 연임을 앞둔 BNK금융지주는 후보 접수 기간이 사실상 4일에 불과했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외부 출신 후보군을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깜깜이’ 논란을 빚었다.
CEO를 내실 있게 육성·검증했는지도 의문이다. 글로벌 금융 그룹은 일찌감치 최종 후보군인 쇼트리스트를 확정해 CEO 과정 연수, 지역 총괄 CEO 임명 등의 육성과정을 거치면서 성과 위주로 실적을 평가한다.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 대상 심층 인터뷰를 통해 다면 평가를 하고 심리 검사까지 동원할 정도로 검증에 내실을 기하는데, 이런 구체적인 절차가 모두 외부에도 공개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외이사로만 꾸린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면접 등을 빼면 후보군 발굴·육성·평가·검증·선정 과정이 외부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상시적으로 관리한다’는 정도의 선언에 그친 실정이다.
금융지주가 CEO 발굴부터 선정에 이르는 포괄적 경영승계 절차를 보다 조기에 가동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기업 공시를 통해 공개하는 등 자발적인 노력 없이 ‘짬짜미’ 의혹을 불식시키기는 요원해 보인다. 투명성을 더욱 높이려면 쇼트리스트 후보군과 상시적인 접촉을 통해 평상시부터 자질을 검증해두는 게 낫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부실은 주주의 손해로 직결된다. 따라서 주주들이 CEO의 장기 연임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우리금융은 대표이사의 3연임 시 주주총회에서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으로 의결해야 하는 특별안건에 부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3월 발표한 ‘지배구조 평가 방법론’은 CEO 후보군 대상 전문성 평가의 공정성·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기관을 활용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지주도 적극 수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