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8시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역. 연말을 앞두고 붉은 자선냄비가 놓인 역사 안에서 구세군 자원봉사자가 흔드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출근길 시민들이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자선냄비 앞에 멈춰 서는 이들은 드물었다. 1시간 동안 지갑을 연 시민은 3명에 불과했다.
1만원을 기부한 오성근(42)씨는 “매년 연말에 기부를 해왔는데, 아무래도 점점 경기가 나빠지면서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민도 “기부를 하고 싶어도 생활비 부담이 커지다 보니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3년째 자원봉사를 나온 김모(27)씨는 “매년 기부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게 체감된다”며 “예전에는 출근 시간대에 10명은 기부했는데 요즘은 그 절반도 안 된다”고 했다.
경기침체로 시민들의 기부 지갑이 더욱 닫히고 있다.
한국리서치 여론속의여론팀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월 진행한 조사에서 ‘최근 2년 내 기부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8%에 그쳤다. 기부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라는 답변이 53%로 가장 높았다. 이어 기부 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29%), 개인의 기부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12%)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 모금액도 감소세다.
구세군에 따르면 전국 자선냄비 모금액은 2022년 22억7000만원, 2023년 21억7000만원, 2024년 21억2000만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취약계층에 연탄을 후원하는 비영리단체 밥상공동체연탄은행(연탄은행)은 올해 목표치인 500만장을 아직 채우지 못했다. 지난달 기준 누적된 연탄이 89만898장으로 전체 목표치의 18% 수준에 불과하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경기불황이 후원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탄광 폐쇄로 연탄공장이 폐업하면서 연탄 가격과 운송비도 잇따라 올랐다”고 설명했다.
연탄은행의 연탄 후원은 2023년 402만9155장에서 2024년 299만4243장으로 약 25% 감소했다. 연탄은행은 매달 한 가구에 연탄 200~300장을 제공해 왔지만 올해는 후원이 줄어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진행하는 희망2026나눔캠페인도 19일 기준 전국 나눔온도가 53.8도, 모금액이 2419억7000만원으로 목표액 4500억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구세군은 모금액 감소 원인 중 하나로 자원봉사자 급감을 꼽았다.
구세군 관계자는 “올해 서울 기준 자원봉사자 수가 22일 기준으로 전년 대비 약 70% 감소했다”며 “거리 모금은 봉사자가 줄어들면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매일 8시간 동안 진행하는 구세군 모금 활동은 자선냄비 하나당 최소 4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자원봉사자 감소로 올해 서울에 설치된 자선냄비는 24개로 지난해 대비 50% 줄었다. 구세군 측은 “2021년까지는 학교 등에서 의무 봉사활동으로 지정해 자원봉사자를 채울 수 있었지만 최근 봉사점수 의무화 폐지, 방학 일정 변화 등 복합적인 이유로 학생 자원봉사자가 크게 줄었다”며 “구세군은 대학교 학생회, 봉사 동아리, 기업 봉사활동, 재능기부를 통해 참여하는 스페셜자선냄비 등의 활동들을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