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알제리 의회가 과거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범죄’로 규정하며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프랑스는 1830년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았고, 알제리는 끔찍한 전쟁을 치른 끝에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24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알제리 의회는 이날 프랑스의 과거 식민 지배 및 이를 미화하는 언행 등을 모두 범죄로 간주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법에는 “알제리의 식민지화라는 비극에 대해 프랑스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프랑스의 완전하고 공정한 보상은 알제리 국가 및 국민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등 문구가 명시됐다. 법안이 가결되는 순간 알제리 국기 색상의 스카프를 두른 의원들은 일제히 “알제리 만세”를 외쳤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후 “프랑스에 의한 알제리 식민지화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알제리 정부에 공식 사과하거나 배상 방침을 밝힌 적은 없다.
프랑스가 지중해 건너 알제리를 침입해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약 200년 전인 1830년의 일이다. 이후 1962년까지 130년 넘게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1954년 11월 1일 알제리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된 민족해방전선(FLN)이 프랑스 정부 기관을 공격하면서 독립 전쟁이 시작됐다. 8년간 이어진 전쟁은 엄청난 희생자를 낳았다.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50만명이라고 추정하지만, 알제리 측 통계에 의하면 사망자 수는 무려 150만명에 달한다.
알제리 전쟁의 장기화는 프랑스 제4공화국이 무너지는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1959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취임한 샤를 드골 대통령이 전쟁 종식을 결정함으로써 1962년 알제리는 독립국이 됐다.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통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프랑스 북서부 군항 브레스트에 있는 거대한 청동 대포다. 16세기에 제작된 이 대포는 ‘바바 마르주그’(Baba Merzoug·축복받은 아버지)로 불리는데 무게가 12t, 포신의 길이는 7m에 이른다. 80㎏ 무게의 포탄을 최장 5㎞까지 날려보낼 수 있다. 원래는 오늘날 알제리 수도인 알제 해안가에 설치돼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 쓰였다. 바바 마르주그의 엄청난 성능에 알제리를 공격하려는 프랑스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1830년 끝내 알제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대포를 전리품으로 챙겨 자국으로 가져갔다.
알제 시민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알제의 수호자’로 여겨진 바바 마르주그가 프랑스에서 전시되고 있는 현실은 알제리로선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알제리 의회는 프랑스 측에 바바 마르주그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중이다.
알제리와 프랑스는 2022년 8월 마크롱이 알제리를 방문해 압델마드지드 테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만 해도 화기애애했다. 당시 마크롱과 테분은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분야에서의 양국 확대 협력 그리고 알제리 독립 전쟁을 비롯한 과거사의 공동 연구에 합의했다. 하지만 2024년 마크롱이 서(西)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하며 두 나라 관계는 다시 험악해졌다. 옛 스페인 식민지인 서사하라는 1975년 이후 모로코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다만 ‘폴리사리오 전선’이란 단체가 서사하라의 독립을 요구하며 모로코와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중이다. 알제리 정부는 프랑스와 반대로 서사하라 독립을 지지하며 폴리사리오 전선을 적극 지원하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