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디펜딩 챔피언’ 흥국생명은 2025~2026시즌을 앞두고 하위권을 전전할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팀 전력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배구여제’ 김연경이 2024~2025시즌 통합우승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최고 수준의 기량으로 공수에 중심 역할을 해주던 김연경의 부재로 인해 흥국생명의 전력은 크게 약해졌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최대어’로 평가받은 미들 블로커 이다현을 영입해 전력 보강엔 성공했지만, 리베로보다도 더 리시브를 잘 받아주던 김연경의 공백으로 인해 이다현의 공격적 역할을 끌어내기엔 한계가 있어보였다. 미들 블로커들의 주로 공격 루트인 속공이나 외발 이동 공격은 양질의 리시브가 올라왔을 때만 구사가 가능하다. 김연경이 떠난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를 메워야 할 정윤주나 김다은, 박민지 등은 리시브에 약점이 있는 선수들이다. 배구에서 공격의 시작인 리시브는 팀 공격의 질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인이다.
게다가 통합우승으로 인해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순번도 추첨 결과 7순위를 받아들어야 했다. 2021~2022시즌에 IBK기업은행에서 뛰다 기량 미달로 퇴출됐던 레베카 라셈(미국)을 뽑았지만, 영 미덥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흥국생명은 만만치 않은 전력으로 ‘돌풍’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2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IBK기업은행과의 홈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 완승을 거두며 시즌 첫 3연승을 달렸다. 승점 3을 추가한 흥국생명은 승점 28(9승8패)으로 4위 GS칼텍스(승점 23, 7승9패)와의 격차를 벌림과 동시에 2위 현대건설(승점 34, 11승6패)도 추격 가시권에 놓게 됐다.
상승세의 중심엔 올 시즌 새로 지휘봉을 잡은 요시하라 토모코(일본) 감독이 있다. 1988년부터 2006년까지 현역 생활을 하며 오랜 기간 일본 국가대표 미들 블로커로 활약했던 요시하라 감독은 지도자로도 성공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V리그의 명문인 JT 마블러스의 사령탑을 맡아 9시즌 동안 우승 2회, 준우승 3회의 실적을 거뒀고, 2023~2024시즌엔 정규리그 전승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흥국생명 사령탑 부임 후 선수들에게 공 다루는 법부터 블로킹 및 수비 시스템 정비, 다양한 전술 등을 이식시켰고, 시즌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모양새다. 1라운드를 2승4패로 마쳤으나 2라운드부터는 7승4패로 확실히 승리 빈도가 늘었다. 24일 IBK기업은행전에서도 이단 연결 상황에서 전위에 세터 이나연이 있을 경우 블로킹에서 빠지고 미들 블로커인 이다현이 사이드 블로킹에서 가세하고 이나연은 블로킹 뒷자리에서 페인트 공격을 대비하는 등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새로 선보이기도 했다.
레베카는 4년 전 IBK기업은행 시절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격력으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고, 이다현과 피치로 이어지는 미들 블로커 라인은 7개 구단 최고 수준의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요시하라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배구 이해도가 높아졌다. 코트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뛰는 모습”이라고 할 정도로, 흥국생명은 상대를 압도하진 못해도 쉽게 지지도 않는 끈끈한 팀 컬러로 변신했다.
요시하라 감독의 목표는 크다. 챔피언결정전 진출과 2연패를 노린다. 요시하라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위해서는 무기를 늘려가야 한다. 훈련을부족한 걸 채워나가면 공격과 수비 시스템이 발전하고, 우리의 무기도 늘어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