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가 우리 한국인과 똑같지만,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외국 국적의 재외 동포 2세와 생김새나 피부색은 다르지만,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이 있다고 치자. 당신은 누구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는가. 후자라고 대답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단일민족’ 신화, 혈통 중시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한국의 특성상 ‘그래도 한국 혈통이 먼저지’라고 답할 이들이 더 많을 듯하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최근 문호 개방을 위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간 신인 드래프트에는 한국 국적인 선수들만 참가할 수 있었지만, 내년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부터는 외국 국적이더라도 부모 중 최소 1명이 과거에 한국 국적을 보유했거나 현재 한국 국적자의 자녀라면 참가가 가능하다. 오랜 저출산으로 인해 엘리트 배구를 하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반가운 일이다. 아울러 6시즌 내에 귀화해야만 이후에도 V리그에서 뛸 수 있다는 조항도 넣었다. KOVO 관계자는 “이번 제도의 최종 목적은 수준급 선수들의 귀화를 통한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라고 밝히기도 했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다만 수준급 해외 유망주들의 귀화가 최종 목적이라면 재외 동포의 자녀들뿐 아니라 국내 고교, 대학에 배구 유학을 와서 일정 기간 이상을 한국에서 체류한 외국 국적 선수들, 이른바 ‘홈 그로운(home-grown)’ 선수들을 드래프트에 참가시키는 게 더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국내 고교, 대학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외국 국적의 선수들이 많다. 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한국 국적 취득, 귀화다. 현재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한국전력에서 아시아쿼터로 뛰고 있는 바야르사이한, 에디(이상 몽골)를 비롯해 MBC 예능 ‘신인 감독 김연경’을 통해 큰 사랑을 받은 뒤 최근 정관장의 아시아쿼터로 합류한 인쿠시(몽골)가 그 예다. 이들은 고교, 대학을 한국에서 다닌 덕분에 한국어도 유창하고, 한국 문화에도 익숙하다.
그러나 이들은 프로 유니폼을 입는 한국인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겐 귀화는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 귀화를 위해선 한국 거주 이력뿐 아니라 한국에서 일정 기간 이상 세금 납부 이력이 필요했지만, 학생으로 살면서 소득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KOVO가 홈 그로운 선수들보다 재외 동포 자녀들에게 문을 먼저 연 것도 ‘단일민족’ 신화, ‘혈통주의’가 작용한 게 아닌가 싶어 아쉽다.
민족이란 개념은 근대의 산물로,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주 무대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거란, 여진, 말갈 등 다양한 유목 민족들과 혈통적으로 섞였으니 사실 우리는 단일민족일 리가 없다. 단일민족이라고 믿고 싶은 것뿐이다.
게다가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일 기준 국내 이주배경인구는 271만5000명으로, 총인구에서 5.3%를 차지한다. 다문화 사회 진입의 척도로 보는 5%를 넘어선 수치다. 이제 한국은 명백한 다문화 국가다. 이제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귀화의 문턱을 낮추면 어떨까. 홈 그로운 선수들의 드래프트 참가 허용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