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던 고슴도치가
밤송이를 만나서 말했다
이봐 그딴 가시 좀 치워주지 그래
길 가는 데 방해가 되는구먼
밤송이는 말이 없고
그 옆에서 밤껍질을 갉작이고 있던
다람쥐가 말했다
너도 그 곤두세운 가시 좀 치워보지 그래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해보게
고슴도치가 지나가고
다람쥐도 사라지고
길 위엔 알맹이 없는 밤송이만 남았다
지나가는 바람에 밤송이가
중얼거리는 말이 새어 나왔다
내가 스스로 익어 벌어지기 전까진
내 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것들이
-시집 ‘숲 속의 대성당’(문학과지성사)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