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이 1470원대를 웃돌던 원·달러 환율이 외환당국의 고강도 구두개입으로 큰 폭 하락했다. 그러나 한동안 이어진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있고, 조류 인플루엔자(AI)까지 겹치며 연말연시 식탁 물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이날 오전 2시 기준 1445.7원에 야간거래를 마쳤다.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보다 4.1원 더 내리면서 하루 동안 37.9원 급락한 것이다. 이는 지난 4월4일(32.9원)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이다.
외환당국이 전날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례적인 수위의 구두개입과 국내 증시로 돌아오는 서학개미(해외 주식투자자)들에게 양도소득세(20%)를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세제혜택 안을 내놓은 것은 최근 고환율이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먹거리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지난달 식품물가지수(2020년=100)는 127.1로, 2020년보다 27.1%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7.2% 오른 것과 비교하면 식품물가 상승률은 이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다. 수입 농축수산물, 수입 원재료 의존도가 높은 가공식품은 환율 변동에 민감해 이들 가격이 오르면 외식 물가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주요 품목별로 보면 겨울철에 수요가 몰리는 귤은 지난달 가격이 전년 대비 26.5%나 뛰었다. 사과 역시 21.0% 오르며 값이 고공행진 중이다. 하반기 들어 치솟은 쌀값은 수확철이 지나며 안정됐으나, 여전히 지난해보다 18.6% 높은 가격이다. 라면(6.8%)과 빵(6.5%)처럼 대중적인 먹거리 역시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계란값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최근 계란 특란 한판(30개)의 가격은 7000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 24일 기준 6835원을 기록했으나, 지난 15∼23일에는 7000원을 넘어섰다. 24일 기준으로 봤을 땐 여전히 평년(6501원)보다 비싼 수준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지난달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에서도 계란은 작년 같은 달보다 7.3% 올라 전체 축산물 상승 폭(5.3%)을 웃돌았다.
동절기 산란계 농장에서 퍼지는 고병원성 AI는 계란 수급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동절기 AI가 확인돼 살처분한 산란계는 300만마리에 달한다. 전국에서 하루 생산하는 계란이 5000만개 수준인데, 살처분으로 약 3∼4%가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농식품부는 아직까지 계란 수급에는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산란계 500만마리가 살처분될 경우 계란 생산량은 300만개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환율과 물가를 둘러싼 긴장감이 이어지면서 한은은 사실상 금리 동결기에 진입했다. 한은은 2026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보고서에서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년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여부 및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리인상 언급은 없었지만, 지난해 말 발표한 2025년 운영보고서에서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할 것”이라고만 적어 인하 여부 자체를 따지지 않았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는 물가나 환율 상황에 따라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은은 외환부문과 관련해서는 “과도한 쏠림 현상에 대해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극 시행하고, 정부와 함께 구조적 수급 불균형을 개선할 것”이라며 “외환시장 24시간 개장, 비거주자 간 역외 원화 사용 관련 규제 정비 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