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비행기) 날개에 껴서 못 내리고 있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인 박승호·오인경씨 부부의 외동아들인 대학생 박근우(21) 씨에게 이 문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근우씨는 지난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표현이 거칠었고, 저는 그걸 그대로 닮았다"며 "항상 어머니가 저와 아버지를 달랬다"고 회상했다.
근우씨는 인터뷰 동안 휴대전화 속 사진 한 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선글라스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세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는 사진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날한시에 떠나보낸 지 곧 1년. 근우씨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순식간에 넓은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그는 지난 4월 결국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났다.
그는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견딜 수가 없었다. 부엌에서는 엄마가 요리하고 있을 것 같고, 서재에서는 아빠가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5년 남짓 지낸 곳이지만 그 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를 도와 가족이 함께 지은 주택이었다.
근우씨는 "그곳에서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겠다고 느꼈다"며 "결국 집을 팔고 이사를 했다"고 털어놨다.
부모의 유품도 대부분 정리했다.
하지만 참사 현장에서 간신히 수거된 어머니의 휴대전화만은 버리지 못했다.
그는 "사진을 포함해 모든 기록은 지워졌지만, 엄마의 마지막이 담긴 물건이라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근우씨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유가족 쉘터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쉘터를 찾는 그는 1층에 놓인 부모의 영정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랜다.
쉘터에는 근우씨처럼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이 모인다.
매일 상주하는 이도 있고 대부분은 각자의 삶을 버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찾는다.
근우씨는 "무안국제공항 한 귀퉁이에는 아직도 유가족들의 아픔이 쌓여 있다"며 "차디찬 바닥에서 유가족들은 지금도 새우잠을 자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든 순간은 거리에서 진상 규명을 외칠 때였다.
그는 "집회에 나가 목이 터지라 외쳐도 사람들이 우리를 이미 잊은 것 같을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겹치며 참사가 더 빠르게 잊히는 듯한 느낌에 무기력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악성 댓글을 볼 때면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네 가족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의 시간은 아직도 2024년 12월 29일에 멈춰 있다"며 "아직 제대로 밝혀진 진실은 하나도 없다. 국가는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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