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제국주의가 한창 팽배하던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북부 아프리카의 알제리도 프랑스의 식민지 중 하나였지만, 다른 식민지들과는 다른 지위를 누렸다. 지중해 너머에 있는 알제리는 단순 식민지나 외지가 아닌 프랑스 본토의 확장된 영토로 취급했다. 소설 ‘이방인’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도 지금의 알제리 땅에서 태어났지만, 카뮈가 태어날 당시의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가 아닌 프랑스 본토의 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카뮈를 알제리 태생이라고 보는 것은 현재 시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프랑스 축구의 ‘레전드’인 지네딘 지단도 알제리계로 알려져있다. 그의 아버지인 스마일 지단과 어머니 말리카 지단은 베르베르계 알제리인으로 프랑스로 이주한 이민자였다. 지단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1972년 스마일과 말리카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알제리 혈통이 흐르지만, 명백한 프랑스 태생에 프랑스인인 지단이지만, 아버지가 알제리 출신이란 이유로 현역 시절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아트사커’를 지휘하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긴 지단은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중 첫 손에 꼽힐 선수다. 그 정도 위상의 지단이라면 그의 아들도 프랑스 대표팀을 선택할 법 하지만, 지단의 아들 루카 지단은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아버지의 나라 프랑스가 아닌 할아버지의 조국인 알제리 국가대표팀을 선택했다. “우리 가족은 알제리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제 선택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알제리 대표팀의 일원으로 모로코에서 열리고 있는 202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 중인 골키퍼 루카 지단은 26일(이하 한국시간) 비인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알제리를 생각하면 항상 할아버지가 떠오른다”면서 “대표팀 합류 전 할아버지와 대화했는데, 나의 결정을 매우 기뻐하며 자랑스러워하셨다”고 전했다. 1935년생의 스마일 지단은 90세가 넘은 고령이지만, 아직 살아있다.
루카 지단은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과 알제리축구협회장이 나에게 연락을 줬을 때부터 ‘내 나라’를 대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가족들과 자연스럽게이야기를 나눴고 모두 기뻐해 줬다”고 말했다.
지네딘은 여전히 프랑스의 ‘아이콘’이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마지막 성화 주자들에게 성화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맡았다. 루카는 이런 아버지의 영향 아래서 자랐다. 아버지가 현역의 전성기를 보냈고, 감독으로도 굵은 족적을 남긴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배웠다.
현재 스페인 2부 리그의 그라나다 소속인 루카는 프랑스 연령별 대표팀도 두루 거쳤다. 하지만 프랑스가 아닌 알제리 대표팀을 택했다. 지난 9월 국제축구연맹(FIFA)에 소속 협회 변경을 요청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그는 아버지와 비교를 피하려고 소속팀에서는 주로 이름인 '루카'만을 유니폼에새겼다. 하지만 알제리 대표팀에서는 당당히 ‘지단’이란 성을 등에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기로 했다.
루카는 “할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내 이름이 들어간 유니폼을 할아버지께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제리는 25일 모로코 라바트의 프린스 물레이 압델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수단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서 3-0으로 승리했다. 선발 출격한 루카는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키며 클린시트를 기록해 승리에 이바지했다. 지단도 관중석에서 아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