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진 바다, 글로벌 전투함 시장이 커지는 이유 [박수찬의 軍]

전 세계의 바다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글로벌 해상교통로를 수십년간 수호하며 ‘세계의 경찰’ 역할을 했던 미국은 동맹국이 더 많은 안보 부담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 해군 호위함 충남함이 기동훈련 도중 함포를 사격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남중국해에선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영유권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 해저 케이블 파손 등의 사건도 안보 문제로 간주되면서 해군력 강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는데 따른 현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군함을 자체 건조하거나 선진국에서 구매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주요 조선소들도 시장 수요에 맞춰 고부가가치 무기로 꼽히는 전투함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계 군함 시장이 빠르게 팽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밀타격·대잠전 능력 강조

 

최근 들어 해군 함정은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미·중 갈등을 비롯한 지정학적 분쟁, 해양 자원을 둘러싼 영유권 다툼, 해저 케이블 손상을 포함한 비전통적 위협이 증가하면서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바다를 끼고 있는 국가라면 해군력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페인 나반티아 조선소에서 프리깃함이 건조되고 있다. AP통신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리서치 앤 마켓 자료에 따르면, 해군 함정 시장은 2024년 1061억 달러(153조8000억 원)에서 2030년에는 1470억 달러(213조1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해군 함정 현대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증가하면서, 첨단 기술이 폭넓게 도입되고, 다양한 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 강조되는 모양새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중요도가 낮아졌던 대잠수함 작전 능력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발트해 해저 파이프라인인 노르드스트림이 2022년 9월 폭발로 파괴됐다. 대만에선 대만 섬과 마쭈 섬을 잇는 해저케이블 절단 사고가 잇따랐다.

 

러시아는 지난달 세베로드빈스크항에서 수중 드론 포세이돈을 탑재할 수 있는 핵추진잠수함 하바롭스크를 진수하는 등 해군 수중전력 현대화에 적극적이다.

영국 해군 26형 호위함이 선체 조립이 완료된 직후 바다로 나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유럽 각국은 수중전 관련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영국산 26형 호위함 5척을 100억 파운드(약 17조 원)를 들여 구매하기로 했다. 26형 호위함은 서방측 함정 중 최첨단 대잠수함전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무인 수상정·수중정 운용도 가능하다.

 

폴란드도 오르카 프로그램을 통해 스웨덴 사브에서 A26형 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했다.

프랑스 해군 구축함이 입항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해군 전투함에 유사시 내륙까지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이 강화되는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독일, 네덜란드, 호주는 전투함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한다.

 

순항미사일이 속도가 느려 적군의 요격 시도에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 탄도미사일을 전투함에 탑재하는 시도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정조대왕급 이지스구축함에는 현무 계열 함대지 탄도미사일이 탑재된다. 중국 해군 055급 구축함도 함대지 탄도미사일을 운용한다.

 

미국은 줌왈트급 구축함과 2030년대 중반쯤 건조될 트럼프급 전함에 극초음속 미사일을 탑재할 예정이다.

 

기술적으로는 4면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 수직발사대(VLS), 통합전투체계(CMS)를 갖춘 호위함이 글로벌 전투함 시장을 선도하는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호위함이 직면하는 위협은 홍해에서의 후티 반군 공격처럼 다수의 미사일·드론·항공기가 동시에 접근하는 형태다. 이같은 위협에 대처하려면 동시 교전이 불가피하다.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이 항해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AESA 레이더는 빔을 전자적으로 바꾸며 탐지 및 추적·표적 분류·교전 지원 등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수직발사대는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대량 탑재할 수 있고, 통합전투체계는 탐지장비와 무장을 연결하면서 위협평가와 교전 통제 등을 진행한다.

 

인도산 브라모스 대함미사일과 같은 초음속 미사일과 더불어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이 확산하면서 호위함도 유사시 통합미사일방어체계에서 활동할 수 있을 정도의 방공망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호위함 또는 구축함은 4면 AESA 레이더와 수직발사기, 통합전투체계를 갖추는 것이 기본적 사양으로 자리잡은 전망이다. 실제로 북한의 최현급 구축함조차도 4면 AESA 레이더와 수직발사기를 갖추고 있다.

 

◆고성능 함정부터 MRO까지 수요 증가

 

해군력 강화 기조가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전투함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유럽은 고성능 전투함 확보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1일 4만2000t급 핵추진항공모함 샤를 드골함보다 훨씬 큰 8만t급 핵항모 건조를 선언했다. 라팔 전투기와 6세대 전투기 등을 탑재할 신형 핵항모는 2038년 취역할 예정이다.

 

영국은 6000∼7000t급 호위함인 인스퍼레이션급 5척을 건조하고 있다. 2030년대 초반까지 5척이 배치될 예정이 인스퍼레이션급은 다양한 임무에 투입할 수 있는 함정으로서 인도네시아와 폴란드에서도 채택됐다.

노르웨이 해군의 프리초프 난센급 구축함이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독일과 노르웨이는 212CD 디젤-전기 추진 스텔스 잠수함을 도입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6척을 구매할 예정인데, 총비용은 1000억 크로네(14조5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노르웨이는 러시아 북부 함대 핵추진잠수함이 활동하는 200만㎢ 넓이의 북대서양을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라 해군력 증강 기조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해양력 팽창에 직면한 인도태평양 지역은 전투함 수요가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경제력이 높고 중국의 위협 강도가 높은 동아시아는 첨단 대형 전투함 수요가 많으나, 동남아시아는 경제적 여건 등의 문제로 중소형 함정과 신흥국 군함 구매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국 해군 055급 구축함이 건조 직후 항해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은 스텔스 성능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모가미급 호위함을 건조, 호주와 수출 계약을 맺는 성과를 거뒀다. 일본은 미국 록히드마틴의 이지스 전투체계를 탑재한 구축함과 이즈모급 경항공모함 등을 확보함으로써 공세적 성격의 해군력을 구축하고 있다.

 

인도는 강력한 국산화 정책을 통해 호위함부터 잠수함에 이르는 각종 군함을 자체 건조하고 있다.

인도 해군 콜카타급 호위함이 항구에 정박해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국산화와 기술개발을 추진하지만, 외국 업체의 도움이 필요한 실정이다. 유럽 등 전통의 강호들과 더불어 튀르키예·한국 등 신흥 주자들도 동남아시아 전투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튀르키예는 인도네시아에 이스탄불급 호위함(3000t급) 2척을 수출하는 계약을 최근에 맺었다. 파키스탄에도 바부르급 초계함(3000t급)을 판매했다. 

 

한국은 필리핀에 호위함과 원양초계함을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태국 해군의 호위함 도입 사업에도 한국의 한화오션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원유 운송 및 영유권 분쟁이 겹치고 있다. 따라서 미국·독일 등에서 중·대형 고성능 전투함 도입이 이뤄져왔다. 예멘 후티 반군의 공세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 등이 지속되고 있어 이같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완제품 함정의 수출 비중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 산업 육성과 일자리 확대를 위해 함정 구매국에서는 현지 생산이나 절충교역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투함 판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제작사들은 일부 물량을 구매국 현지 조선소에서 만들거나 공동개발하는 방안, 부품·장비를 구매국에서 조달하는 등의 절충교역을 제시해야 수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시스템이 제안하는 잠수함 통합전투체계와 수상함 통합전투체계. 세계일보 자료사진

실제로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9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국영 시마조선소에서 페루 해군 및 시마조선소와 함께 차세대 잠수함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HD현대중공업은 내년 1월부터 페루의 해양 환경을 반영한 설계를 도출하고 최신 장비 패키지, 무장, 통신체계 등을 적용할 예정이다.

 

기존 함정을 계속 사용하기 위한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첨단 장비가 다수 탑재되는 전투함은 척당 건조비도 매우 비싸다. 구매국 정부로선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전투함이나 해양 순찰을 포함한 저강도 임무를 수행하는 초계함 등의 수명을 연장해서 사용 기한을 늘리려는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군함 MRO 시장 확대로 이어진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지원함정에 대한 MRO를 진행하고 있으며, HJ중공업도 최근 4만t급 건화물 및 탄약운반선 중간 정비 계약을 수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