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 이례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월세 매물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실제 거래는 오히려 줄어드는 ‘공급 증가·거래 감소’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시장 위축이라기보다는 가격을 둘러싼 임대인과 세입자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많지만 ‘비싼’ 월세
2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10월16일부터 12월22일까지 약 두 달간 서울 지역 월세 거래량은 1만955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만1404건) 대비 8.6% 감소한 수치다.
특히 월세 수요가 가장 집중된 강남구의 거래량은 80% 이상 급감했다.
거래가 줄어든 사이 매물은 빠르게 쌓이고 있다. 증가분의 상당수는 강남권과 한강 인접 지역에 집중돼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엇갈린 흐름의 원인으로 가격 괴리를 지목한다.
임대인들은 세금 부담과 금융비용 상승을 이유로 월세 인하에 소극적인 반면, 세입자들은 현재의 월세 수준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계약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번 현상은 월세 공급과 수요 간 가격 괴리가 본격화됐다는 신호”라며 “임대인은 세금 부담을 전가하려 하고, 세입자는 체감 비용 상승을 버티지 못해 거래가 멈춘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월세 매물 증가에도 거래가 줄어든 것은 시장 침체라기보다 가격 조정 국면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세 압박한 정책, 월세 가격 불안정성↑
월세는 전세와 달리 매달 현금이 빠져나가는 고정비라는 점에서 심리적 부담이 크다.
최소 1년 단위 계약이 일반적인 만큼, 세입자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느끼는 순간 계약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로 인해 거래 감소는 수요 소멸이 아닌 ‘대기 수요’ 증가로 해석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흐름이 정책의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10·15 대책 이후 종합부동산세와 보유 부담이 커지면서, 임대인의 비용이 임대차 시장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전세 시장을 압박한 정책이 의도치 않게 월세 시장의 가격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며 “임대인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지 않는 한 단기간에 월세 인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지금은 기다리는 시장”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매물 증가·거래 감소’라는 비정상적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서울 거주 수요 자체는 견조한 만큼, 결국 시장은 가격 조정이나 계약 조건 완화라는 방식으로 균형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다만 조정이 지연될 경우 일부 지역에서는 공실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겉으로는 매물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격과 조건이 맞지 않는 매물만 쌓이면서 실수요자가 체감하는 월세난과 주거 불안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지금의 월세 시장은 거래가 멈춘 침체가 아닌 가격을 둘러싼 힘겨루기 국면”이라고 요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