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노쇼’(No-Show)란 오기로 한 사람이 예약이나 약속을 취소하지 않은 채 그냥 나타나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음식점에서 종종 일어나곤 한다. 지난해 충북 충주에서 누군가 시내 식당 5곳에 전화를 걸어 “50인분의 단체 음식을 포장해달라”고 주문한 뒤 정작 가게에 오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식재료까지 새로 구매해 정성껏 요리한 뒤 도시락 형태로 만들어 놓은 해당 음식점 주인들만 날벼락을 맞았다. 식당 말고 병원, 미용실, 고속버스 터미널, 공연장 등도 노쇼의 해악이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음식점, 미용실 등 국내 5대 서비스 업종에서 노쇼로 인한 매출 손실은 해마다 4조5000억원에 달한다.
노쇼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을까. 우리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이론상 가능하긴 하다. 법원에서 인정되면 5년 이하 징역형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다. 문제는 노쇼를 저지른 당사자가 처음부터 업무방해를 할 작정으로 그런 짓을 했다는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무척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냥 장난으로 해본 일”이라며 사과하거나 “예약을 한 것은 맞으나 그 뒤 중대한 사정 변경으로 도저히 이행할 수 없었다”라는 식으로 발뺌하면 대응이 곤란한 게 현실이다.
서비스 이용자뿐만 아니고 제공자도 노쇼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유명한 가수나 연주자가 공연 당일 갑자기 종적을 감추는 일이 대표적이다. 물론 예기치 못한 사고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수 없게 되었다든지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티켓을 예매한 이들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겠으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주최 측이 상세히 이유를 설명하고 정중히 사과하며 환불을 실시한다면 무작정 분통을 터뜨릴 것은 못 된다고 하겠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세계적인 공연예술 회관인 존 F 케네디 센터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 존 F 케네디 센터’로 명칭을 바꿨다. 46세 나이에 암살로 세상을 떠난 미국 제35대 대통령 케네디에게 헌정된 곳에 현직 대통령 트럼프의 이름까지 얹은 것이다. 이에 2006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케네디 센터에서 연주해 온 재즈 음악가 척 레드(67)가 갑작스레 공연을 취소해 버렸다. 뚜렷한 사유를 밝히진 않았으나 평소 트럼프에 비판적인 그가 케네디 센터 개명에 항의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센터 측은 27일 레드를 상대로 100만달러(약 14억4500만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센터는 레드에게 보낸 서한에서 “당신의 편협한 노쇼로 인해 우리는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고 맹비난했다.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한 노쇼는 사법부에서 어떤 판단을 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