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군사정권이 쿠데타로 집권한 지 약 5년 만에 총선이 시작됐다. 군부는 이번 선거로 정권이 다당제에 기반한 민간 정부로 이양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군부 통치 연장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8일(현지시간) 미얀마 전국 330개 타운십(행정구역) 가운데 102곳에서 총선 1차 투표가 일제히 시작됐다. 내년 1월11일 100곳, 같은 달 25일 63곳에서 2, 3차 투표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반군 등이 장악한 나머지 65곳은 현재 선거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2021년 2월 아웅산 수치 전 국가고문이 이끌던 정부가 군부에 축출된 뒤 처음 치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군사정권과 가까운 후보들 위주의 반쪽짜리 선거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상원 224석 중 168석, 하원 440석 중 330석이 이번에 선출되며, 상·하원의 각각 25%인 나머지 166석은 군 최고사령관이 임명한 현역 군인에게 배정된다. 이번 총선에는 57개 정당이 4963명의 후보자를 등록했지만, 전국 단위로 출마하는 정당은 6곳에 그친다. 이 중 군사정권이 지원하는 통합단결발전당(USDP) 소속 후보가 1018명으로 전체 출마자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수치 전 고문이 이끌던 국민민주연맹(NLD)은 쿠데타 이후 군정이 요구한 등록 절차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산돼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다. 수치 전 고문은 쿠데타 이후 구금돼 2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총선이 끝나면 60일 안에 의회 간접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USDP가 선거에서 압승하고 군사정권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대통령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권단체와 반군부 세력은 군부의 강한 통제 하에 시행되는 일방적 선거라며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형식에 그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번 선거가 군부 통치를 포장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24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성명을 내고 “(미얀마 군정의) 폭력·탄압·협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미얀마 군정은 잔혹한 폭력을 동원해 국민에게 투표를 강요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국민이 자유롭고 의미 있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와 평화집회를 할 조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이날 선거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았다. 투표소마다 유권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던 2020년 총선에 비해 이번에는 투표소가 상대적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현지 매체 미얀마나우는 “이른 아침 양곤 도심 투표소에서 목격된 유권자 대다수는 군사정권 공무원 가족들이었다”고 전했다. 한 남성은 “핀마나에는 사람(투표자)이 극히 적었다”며 “하지만 공무원 주택 근처 투표소에선 수백 명이 줄을 섰다”고 이 매체에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 군 당국과 정부 관리들이 주민들에게 투표하도록 압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남부 몬주의 한 주민은 “투표하고 싶지 않지만, 어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우리 마을에 와서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표하러 갔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한 중부 만달레이 주민 느웨는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으면 여행 제한이나 다른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