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행정부 NSS를 대하는 자세

北 비핵화가 빠졌다는 것보다
제외 결정 내린 배경 면밀 분석
美의 ‘포스트 트럼프’ 행보 가늠
한·미 동맹 역할 변화 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달 초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북한과 비핵화가 빠졌다는 것이 국내에서 큰 쟁점으로 다뤄졌다. 북한이 여전히 가장 큰 안보 위협인 우리에겐 우려를 불러올 수밖에 없지만, 사실 미국 입장에서 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새롭지는 않아 보인다. 미국에 북한 비핵화는 당면한 안보 위협이라고 하기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이미 2024년 미국 양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발간된 정강정책에서 현 여당인 공화당뿐 아니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도 북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바 있다. 더군다나 이번 NSS는 33페이지짜리 선언적 기술로 구성돼 있다. 맞느냐, 틀리느냐를 넘어 현실이 그렇다.

NSS의 성격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 국무부에서 유럽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해밀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NSS를 분석한 글에서 “과거 이런 문서들을 여러 차례 작성하는 데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 문서들이 외교 정책 실무자들에게 거의 아무런 작전적 지침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이들은 전략이라기보다는 특정 행정부 내부에서 상충하는 압력들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압계에 가깝다”고 말했다. NSS와 같은 ‘전략 문서’들은 모순적이게도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행정부가 대중에게 스스로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싶은지를 각인시키는 정치적 문서에 가깝다는 것이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미국 유권자들은 대개 해외보다는 국내 문제에 더 관심이 많고, 일부 해외에 관심을 갖는다 해도 북한보다는 중국, 러시아, 유럽에 더 관심이 많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에 보여주기 위해 서술한 정치화된 간략한 대외 전략 기술에서 더 시급한 우선순위는 이들 문제에 할당된다. 대규모 이주를 중국, 러시아, 테러리즘보다 더 큰 미국의 주요 외부 위협으로 기술한 점, 유럽을 ‘문명적 소멸’에 직면해 있다고 비난한 점, 미국의 군사안보적인 중심축을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최근 수십년 또는 수년간 감소한 구역에서 벗어나 미주 대륙으로 재조정”했다고 한 점 등이다. 특히 러시아 문제를 “유럽에서의 대러 관계 관리”로 표현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미국의 대중 경제 관계 재균형”으로 정의한 것은 미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경쟁의 구도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워싱턴 정책가의 ‘엘리트’ 전문가, 관료들은 대부분 ‘미국 우선주의’로 점철된 이 트럼프식 외교 정책 전략서를 도덕적으로 깎아내리기 바빴다. 하지만 아슬르 아이든타쉬바쉬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문서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이를 토대로) 포스트 트럼프 시대의 NSS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왜 이런 NSS가 나왔는지 미국을 둘러싼 현실의 구조와 환경을 이해해보자는 뜻이다. 아이든타쉬바쉬 연구원은 NSS에 나타난 동맹국 부담 전가(burden-shifting)와 국제기구에 대한 비판, 미국 이익의 더 좁은 정의, 경제적 이해관계 중심성 등을 거론하며 “심지어 민주당 행정부하에서조차 미래의 NSS는 트럼프 시대의 (이들) 일부 주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치적 언어를 걷어내고 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중국이 미국의 수출 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경쟁에서 크게 밀리지 않게 되는 등 미국이 처한 구조적인 현실이 NSS에 남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NSS에 북한 비핵화 언급이 빠졌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북한 비핵화가 빠지게 된 배경을 보고, 앞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궤도를 걷게 될지 NSS를 통해 가늠하는 데 무게를 둬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국방비 인상 기대에 부응한 한국을 ‘모범 동맹’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 말은 즉 한국이 미국이 원하는 ‘동맹국 부담 전가’의 대표 주자로 나섰다는 뜻으로 들린다. 어떻게 보면 부담스러운 호칭이 아닐 수 없다. 예전처럼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것만을 동맹의 주요 목적으로 삼지 않는 미국이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한다면 한·미 동맹의 여러 측면은 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