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국회 연석 청문회를 하루 앞둔 29일 1조6850억원 상당의 개인정보 유출 피해 보상안을 발표했다. 전날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의 사과문 발표에 이어 역대급 보상안을 발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하지만 청문회 참석을 거부한 김 의장의 늑장 사과와 실효성 낮은 보상안의 ‘꼼수’ 논란이 성난 여론을 더욱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정보유출 사태 이후 진정성과 거리가 먼 듯한 쿠팡의 대응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자 정부와 국회도 전방위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쿠팡이 발표한 보상안은 개인정보가 유출된 3370만 고객에게 1인당 5만원의 쿠팡 구매이용권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내년 1월 15일부터 와우회원·일반회원에게 같은 금액이 지급된다.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쿠팡의 탈퇴 고객도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 보상안 전체 규모는 쿠팡의 올해 1∼3분기 순이익(3841억원)의 4.4배에 달하며,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한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수준이다. 해럴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고객을 위한 책임감 있는 조치를 취하는 차원에서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별 보상액이 5만원 상당에 그친 데다, 쿠팡 로켓구매(5000원)·쿠팡이츠(5000원)·쿠팡트래블 상품(2만원)·알럭스 상품(2만원) 4가지 구매 이용권으로 구성된 보상 내용을 보면 “기가 차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여행(쿠팡 트래블)과 뷰피·패션(알럭스) 관련 상품은 이용자가 적은 편이고, 로켓구매와 쿠팡이츠를 포함해 대부분 추가 금액을 내야 살 수 있는 품목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주부 A씨(36)는 “나는 로켓구매만 이용하는데, 무슨 5만원 보상이냐 5000원짜리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인 B씨(29)는 “쿠팡 트래블과 알럭스가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며 ‘눈속임 보상’이라고 비판했다. 쿠팡 보상안이 유출 피해 고객들에 대한 사죄의 의미보다 회원 탈퇴를 최소화하고 매출을 확대하려는 꼼수로 비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피해 회복보다 거래 관계의 유지·강화를 목적으로 한 보상 방식”(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라며 쿠팡이 계속해서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질타했다. 앞서 쿠팡은 이번 사태에 대한 ‘셀프 조사·결과 발표’ 후 비판이 확산하자 지난 26일 경위 설명 입장문을 한글과 영문으로 공개했는데 일부 표현에 차이를 둬 논란이 됐다. ‘셀프 조사’ 논란 관련, 한글본에서는 잘못된 주장으로 ‘불필요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영문본에서는 ‘잘못된 불안감(false insecurity)’으로 표기한 게 대표적이다. 쿠팡 측이 미국 현지 투자자와 향후 소송 등 법적 다툼을 의식해 유리하게 일부 단어를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 의장이 국회 청문회 출석을 거부한 채 한 달 만에 내놓은 사과가 공허하게 들린 이유다.
참여연대는 “쿠팡은 국민을 기만하는 보상안을 즉각 철회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인정에 기초한, 본인들의 책임에 걸맞은 실효성 있는 보상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