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5%라길래 열어봤더니”… 파킹통장 조건에 지친 돈, CMA로 이동

고금리보다 ‘조건 피로도’… 파킹통장 대신 CMA로 움직이는 여윳돈
서울 시내 한 지하 공간에 주요 시중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나란히 설치돼 있다. 최근 고금리 파킹통장과 CMA 등 단기 자금 운용 상품을 둘러싼 은행·증권사 간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직장인 김모(38)씨는 최근 여윳돈 5000만 원을 잠시 맡길 곳을 찾다 파킹통장을 여러 개 비교해봤다. 광고 문구는 화려했다. ‘연 5%’, ‘하루만 맡겨도 이자 지급’. 하지만 상품 설명을 읽어 내려갈수록 고개가 갸웃해졌다. 첫 거래 조건, 급여이체, 마케팅 동의까지 맞춰야 최고금리가 적용됐다. 김씨는 “돈을 잠시 세워두려는 건데, 월급통장처럼 관리해야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의 스마트박스통장은 대표적인 고금리 파킹통장으로 꼽힌다. 방문 없이 모바일뱅킹으로 가입할 수 있고, 개인·개인사업자 모두 1인 1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SC제일은행 스마트박스통장의 기본금리는 연 0.30%다. 다만 통장 내 자금을 ‘스마트박스’로 분리해 보관할 경우, 매일 잔액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에 한해 연 3.00% 금리가 적용된다. 이 스마트박스 금리는 잔액이 100만 원 이상일 때만 적용된다.

 

여기에 각종 우대조건을 충족하면 금리는 더 올라간다. 첫 거래 고객 여부, 급여이체, 마케팅 동의 등 조건을 충족할 경우 스마트박스에 담긴 금액을 기준으로 최대 연 5.00%(세전)까지 금리가 높아진다. 반면 우대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스마트박스가 아닌 일반 잔액에는 기본금리만 적용돼 실제 체감 수익률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대 조건에는 ▲첫 거래 고객(연 1.0%p, 1년 한시) ▲스마트박스 잔액 1억 원 이상(연 0.5%p) ▲마케팅 동의(연 0.2%p) ▲급여이체(연 0.3%p) 등이 포함된다.

 

스마트박스 잔액에 대해서는 일복리 방식으로 이자가 계산되지만, 조건을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체감 금리는 크게 낮아진다.

 

BNK경남은행의 파킹통장도 단기 자금 대기용 상품으로 자주 언급된다.

 

BNK경남은행의 파킹통장은 기본금리가 연 2.30%로 설정돼 있다. 여기에 신규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 금리가 적용되면 최대 연 3.0% 금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이벤트 금리는 가입 후 3개월간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며, 금리 적용 한도는 5000만 원까지로 제한된다. 이벤트 기간이 끝나면 금리는 다시 기본금리 수준으로 돌아간다.

 

가입은 모바일뱅킹 전용으로, 영업점 방문 없이 비대면으로만 가능하다. 또한 이 통장은 예금자보호법 적용 대상으로,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합해 1인당 최대 1억 원까지 보호된다는 점에서 단기 자금을 맡기는 파킹통장 본연의 안정성도 갖췄다는 평가다.

 

기본금리만 놓고 보면 시중 파킹통장 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이벤트 금리는 기간과 한도가 제한적이다. 이벤트 종료 이후에는 기본금리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짧게 쓰는 통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파킹통장의 조건 피로도가 커지면서 일부 자금은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CMA 잔액은 이달 23일 기준 100조6561억 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90조8273억 원) 대비 약 9조8300억 원 증가한 수치다. CMA 잔액이 100조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MA는 예금이 아니라 증권사가 고객 자금을 단기 금융상품에 운용해 발생한 수익을 돌려주는 구조다. 별도의 우대조건 없이도 이자가 붙고, 입출금이 자유롭다는 점이 파킹통장과의 가장 큰 차이다.

 

최근 CMA 금리는 연 2%대 중반~3%대 수준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파킹통장의 최고금리보다는 낮아 보이지만, 조건 없이 꾸준히 적용된다는 점에서 실질 체감 수익은 오히려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파킹통장은 금리 숫자는 높은데 관리가 번거롭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반면 CMA는 “금리는 조금 낮아도 신경 쓸 게 없어서 편하다”는 평가가 많다. 단기 자금을 잠시 대기시키는 용도라면, 조건 없는 구조가 더 잘 맞는다는 것이다.

 

고금리를 내세운 파킹통장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실제 수익은 우대조건을 얼마나 꾸준히 충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반면 CMA는 금리가 다소 낮더라도 조건 없이 자금이 굴러간다는 단순함이 강점이다.

 

다만 CMA는 예금이 아닌 투자상품인 만큼,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5000만 원 보호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