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기록이 있는 나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영어의 ‘아카이브’(archive)는 통상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 및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장소 또는 기관을 의미한다. ‘아르키붐’(archivum)이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차원의 아카이브 구축은 프랑스가 시초로 통한다. 대혁명이 일어난 바로 그해인 1789년 파리에 국립 아카이브(Archives Nationales)가 설립됐다. 이후 19세기 들어 영국과 그 자치령인 캐나다에도 차례로 아카이브가 세워졌다. 한국인들 사이에 특히 유명한 미국의 국립 아카이브(National Archives)는 1934년 출범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에 있는 ‘6·25 전쟁 아카이브 센터’의 전문 자료실 모습. 6·25 전쟁 당시 신문, 전투 일지, 각종 전단(삐라)과 관련 다큐멘터리·영화 등 자료 700여건을 열람할 수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박정희정부 시절인 1969년 8월 총무처(현 행정안전부) 산하에 ‘정부기록물보존소’라는 기관이 생겨났다. 이는 당시 아카이브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공공 기관의 기록 관리를 위한 기반을 처음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부가 국가적 기록물의 체계적 관리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아무래도 민주화 이후라고 봐야 옳을 듯하다. 김대중정부 출범 직후인 1999년 ‘공공 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한국 아카이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조치로 평가된다. 국가적 아카이브 구축의 중요성을 깨달은 노무현정부는 2004년 6월 기존 정부기록물보존소를 ‘국가기록원’으로 개편했다.

 

세계일보는 국가기록원 출범에 맞춰 2004년 5월부터 ‘기록이 없는 나라’라는 문패의 탐사보도 시리즈 기사를 총 9일에 걸쳐 연재했다. 특별기획취재팀 기자들이 총동원돼 정부 기록물의 작성·보관·폐기 전 과정을 추적했다. 여기에서 드러난 기록물 무단 폐기 및 방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한국 사회에 말 그대로 ‘기록 신드롬’을 일으켰다. 한국신문상(2004)과 삼성언론상(2005)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2년 뒤인 2006년 공공 기관 기록물 관리법이 개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2019년 당시 문재인정부는 ‘기록의 날’을 맞아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부에는 ‘6·25 전쟁 아카이브 센터’가 있다. 2022년 12월 개관한 이 센터는 전 세계에 흩어진 6·25 관련 자료를 주제별로 정리·배열해 일반 관람객과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장점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에 있는 ‘6·25 전쟁 아카이브 센터’의 도서 자료실 모습. 6·25 전쟁, 세계 전쟁사, 국내 전쟁사, 기타 교양·어린이 도서 등 2만여권이 비치돼 있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탁 트인 통창 전망이 압권이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2023년 7만명, 2024년 10만명이 다녀간 데 이어 올해는 28일 오전을 기준으로 누적 이용객이 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참으로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2023년 4월 취임 직후 “6·25 전쟁 기록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국민과 함께 나누고자 노력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는데, 2년여 만에 큰 성과를 거뒀다. “자료 접근성과 이용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백 회장의 약속이 2026년에도 꼭 이행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