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비상사태 일으켰다는 尹 국힘도 “의회 폭거 맞서야” 두둔 역대 대통령·국회 관계 돌아보길 계엄 옹호하는 당엔 미래 없을 것
미군 조지 패튼(1885∼1945) 장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일 좋아하는 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1970)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시칠리아 점령 임무를 완수한 패튼에게 ‘영국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서둘러 발길을 옮기는 패튼의 뒤통수에 대고 어느 종군 기자가 대뜸 외친다. “새 임지에서 또 병사들 따귀를 때릴 겁니까?” 패튼은 화가 났는지 몸을 부르르 떨지만 대꾸하지 않고 사라진다.
비록 영화이나 사실이 그랬을 것이다. 패튼이 시칠리아에서 야전병원 시찰 도중 입원 환자 2명의 뺨을 후려친 사건은 미국을 넘어 연합국 전체를 경악시켰다. “전투가 두렵다”고 호소하는 병사들에게 패튼은 “꾀병 부리지 말고 나가서 싸우다가 죽든지 하라”며 폭력을 행사했다. 미군 지휘부가 쉬쉬했던 이 일이 1943년 11월 언론의 폭로로 알려지자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이 격노했다. 이듬해인 1944년 1월 부대 지휘권을 잃은 패튼은 런던으로 보내져 한동안 대기발령 상태에 놓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패튼이 사건 직후 피해 병사와 군의관 등에게 사죄했음에도 비난이 끊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군사 전문가 앨런 액설로드는 국내에 번역된 저서 ‘패튼’(2020)에서 이같이 지적한다. “그(패튼)는 사과할 때마다 자신의 방법이 분명 잘못된 것이었지만 자신의 동기는 절대 나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군의 승리와 조속한 종전을 위해서라면 정의롭지 않은 수단도 얼마든지 동원이 가능하다는 논리인 셈이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 방해 등 사건 결심공판을 보며 패튼이 떠올랐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정당한 계엄’이란 종전 입장을 고집했다. 그러면서 “국가 비상사태를 발생시킨 원인은 국회, 거대 야당”이라고 주장했다. 여소야대 국회가 사사건건 정부 발목을 잡는 현실에 윤 전 대통령이 낙담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중무장한 군대를 국회로 보내 의원들을 체포함으로써 입법 기능을 무력화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나.
대통령제 국가에서 여소야대하의 정국 교착은 흔히 있는 일이다. 프랑스는 2024년 7월 하원 총선거 결과 여소야대 의회가 출현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거의 ‘식물대통령’ 신세가 된 지 오래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을 부여한다. 마크롱은 언제든 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여당이 꼭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지만 아무리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도 함부로 행사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 말고는 전부 여소야대 국회에 직면했다. 그래도 계엄 같은 헌정 중단 위기로 치달은 적은 없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를 순식간에 여대야소로 뒤집는 비상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엔 일종의 연립여당 운영을 통해 지지세를 늘리는 한편 야당 총재와도 수시로 영수회담을 갖고 소통했다. 임기 2년 차에 여소야대 국회의 탄핵소추를 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직후 총선 승리로 여대야소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줬다. 오직 윤 전 대통령만이 계엄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완전히 자폭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12·3 사태 1년을 맞은 장동혁 대표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설령 ‘의회 폭거’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에 맞설 무기가 어떻게 계엄이 될 수 있나.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사용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이 건전한 보수 야당이자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윤 전 대통령 및 계엄 옹호론과의 과감한 손절이 필수다. 선거 때마다 “앞으로 여소야대가 되면 또 계엄을 선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시달리고 싶지 않거든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