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 5공장(P5), SK하이닉스 청주 M15X, 그리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까지.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지금 전례 없는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며 세계 시장 재도약을 위한 거대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장비 기업들까지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우며 이른바 ‘한국 반도체 생태계’로 속속 편입되고 있다. 산업의 지형만 놓고 보면 한국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다시 중심으로 뛰어오를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겉으로는 어느 때보다 완벽한 산업 여건이 갖춰진 듯하지만, 실제 경쟁력의 근간은 단순한 자본이나 장비에 달려 있지 않다.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반도체 산업은 그 어떤 제조업보다 암묵지(Tacit Knowledge)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수율을 좌우하는 장비 컨디션을 읽는 감각, 공정·장비·소재 간 미묘한 상호작용을 경험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은 논문이나 매뉴얼만으로는 절대 전수되지 않는다. 지식기반 경쟁력(Knowledge-Based View)과 조직 학습론(Organizational Learning Theory)의 관점에서도 축적된 경험을 기반으로 한 숙련도가 곧 기술 경쟁력이며, 핵심 인력의 경험 격차는 곧 국가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재보다 미래를 대비한 인력 양성 체계다. 단순히 졸업생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 현장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는 엔지니어, 즉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실무 중심 교육을 받고 충분한 실습과 R&D 경험을 갖춘 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계약학과와 특성화학과 확대는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핵심은 ‘졸업장 공급’이 아니라 실제 R&D와 제조 현장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를 사전에 탄탄히 길러내는 데 있다. 경험 기반 학습(Learning by Doing)과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익혀 현장에 적용하는 능력, 즉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을 강화하려면, 대학·기업·장비사가 함께 참여하는 실전형 교육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특히 실제 장비를 갖춘 교육용 미니 팹을 대학 내에 설치해 학생들이 졸업 전부터 ‘진짜 공정’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기업 현장실습 역시 명목뿐인 인턴십에서 벗어나 최소 반년 이상 실제 공정 개선과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실전형 프로그램으로 개편해야 한다.
금연욱 반도체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