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만에 재심 무죄가 나온 할아버지 판결은 왜곡되고 굴절됐던 역사가 바르게 껴지는 단추가 됐습니다.”
지난달 31일 대전 동구 골령골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이관술(1902-1950) 선생의 고유제. 이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65∙경북 포항)씨는 “없는 죄를 만들어 모욕과 박해를 해도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며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고교 교사로 일제강점기 학생 보호를 위해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 선생은 여운형, 김구, 박헌영 등과 어깨를 견준 항일 운동가였다. 그러나 해방 직후 독립운동가 탄압을 목적으로 자행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주모자로 몰렸다. 1946년 1심에서 무기징역 선고에 이어 1950년 7월 대전형무소 수감 중 골령골로 끌려와 처형 당했다.
위폐사건은 이 선생 등 조선공산당의 핵심 간부가 1945년 말∼1946년 초 서울 소공동 근택빌딩에 있는 사설 인쇄소인 조선정판사에서 6회에 걸쳐 200만원씩 총 1200만원의 위조지폐를 찍어 조선공산당의 활동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미군정의 조작 사건이다. 2023년 7월 유족은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와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들이 매장됐던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고유제를 열고 79년 만에 누명을 벗은 이 선생의 영령을 위로했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위폐사건은 미군정기 경찰과 검찰의 조작 사건이자 사법살인이었다”며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한 검찰의 후대검사와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앞으로 이 선생의 명예회복과 함께 역사를 바로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고유제에는 2015년 ‘이관술과 미군정기 조선정판사위조지폐 사건’을 처음 연구해 논문을 발표한 임성욱 교수(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도 참석했다. 임 교수는 “이 사건은 미군정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조선공산당으로 돌리기 위해 조작됐다”며 “재심 무죄 판결은 이 사건을 연구한 저에게도 보람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족은 올해 이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국가보훈부에 재신청할 예정이다. 그동안 보훈부는 이 선생의 항일 이력을 인정하면서도 ‘해방 후 행적(위폐 사건)’을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재심 무죄로 서훈 거부의 핵심 근거가 사라진만큼 유족은 정부의 서훈을 기대하고 있다.
손씨는 “정부가 외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진만큼 올해 준비를 잘해서 상반기에 독립운동가 서훈을 신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관술의 유해는 아직 골령골에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그의 막내딸인 이경환(91)씨는 유전자를 등록했다.
골령골엔 1950년 6·25전쟁 이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있던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 재소자 등 정치범과 대전·충남지역 인근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에 끌려와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처형돼 묻혔다. 희생된 민간인은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최소 3000명에서 최대 7000명으로 추산된다.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 4000여구는 세종 추모의집에 임시 안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