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원·달러 환율에 대한 과도한 상승 기대를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줄여야 한다면서도 고환율 원인을 특정 주체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총재는 2일 한은에서 시무식을 한 뒤 기자실을 찾아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연초에도 외환시장에 대한 경계감이 계속되는지’를 묻는 말에 국내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이 환율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가 강하게 형성돼 최근 원화 가치 절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해외 IB(투자은행)는 1480원 환율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며 “대개 1400원 초반 정도로 (전망하는) 보고서가 다 나오는데, 국내에서만 유튜버들이 원화가 곧 휴지 조각이 된다고들 한다. 내국인 기대가 환율 상승을 크게 드라이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얼마를 적정 환율이라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DXY(달러인덱스)와 괴리돼서 올라가는 건 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이 미국에 연 2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상황과 관련해서는 “절대로 기계적으로 안 나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내가 한은을 떠난 뒤라도 금융통화위원들이 안 해줄 것이다”라며 “한은이 금고지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 임기는 올해 4월까지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 역할론도 거듭 언급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거시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지금보다 헤지를 더 많이 해야 하고, 해외 투자를 줄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자기들이 외채를 발행하게 해주고 그걸 통해서 외환시장에 주는 영향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국민 노후 자금의 수익률을 훼손한다는 일각의 비판도 일축했다.
그는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사람들 취업이 안 된다든지, 환율이 올라 수입업체가 어려워진다든지 하는 코스트(비용)를 지금까지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학개미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워낙 옆으로 기었으니까 해외로 나가는 게 좋다고 당연히 생각했던 것이고, 국민연금도 거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수익률만 높이려 하면 각자 합리적 방향이겠지만, 큰 틀로 봤을 때 나라 전체에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고환율에 대한 이런 분석이 특정 경제주체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어떤 부분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는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이라며 “누군가를 탓하는 말로 모든 분석이 넘어가 버리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새해 첫 거래일인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 2시30분 기준 전 거래일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보다 3.75원 오른 1442.75원에 거래 중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4일 한때 1484.9원까지 치솟았다가 당국의 강력한 구두 개입 메시지와 세제 혜택 등이 나오며 상승세가 꺾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