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걸어온 길’ 안성기 별세…모두가 사랑했던 ‘국민배우’

안성기 별세…음식물 목에 걸려 이송된지 6일만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한국영화배우협회에 따르면 안성기는 이날 오전 9시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은 지 6일 만이다. 혈액암 투병 중에도 연기 복귀를 열망하며 삶의 의지를 다졌던 그였기에 전해진 갑작스러운 비보는 대중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안성기의 삶은 한국 영화의 역사이자,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이래 69년간 17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늘 다른 얼굴로 대중 앞에 섰다. 고인이 남긴 필모그래피는 단순히 작품의 목록을 넘어 한국인이 걸어온 길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기록물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아역 시절 ‘황혼열차’와 ‘하녀’에서 안성기가 보여준 천진난만한 모습은 전후 가난과 혼란 속에서도 희망을 찾던 한국인의 얼굴이자, 근대화 과정에서 붕괴해가는 전통적 가족상의 비극을 비추는 창이었다. 산업화의 명암이 교차하던 1980년대에는 시대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대변하기 시작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상경 청년 덕배, ‘고래사냥’의 방황하는 청춘, ‘칠수와 만수’에서 세상을 향해 울부짖던 모습은 민주화 열망과 개발 독재의 그늘을 동시에 담아낸 시대적 아이콘이었다.

 

1990년대 대중문화의 팽창기에 안성기는 권위주의를 벗어던진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며 한국 영화의 산업적 기틀을 닦았다.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투캅스’에서는 부패한 권력의 민낯을 풍자로 풀어냈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냉혹한 살인마를 연기하며 온화함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밀레니엄 이후에는 한국 영화의 든든한 어른이자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실미도’로 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고, ‘화려한 휴가’로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과 소시민의 고결함을 스크린에 새겼다. ‘부러진 화살’에서는 사법 정의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사회에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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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제4회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배우 안성기. 뉴스1

고인은 스크린 밖에서도 ‘국민 배우’라는 칭호에 걸맞은 품격과 책임을 잃지 않았다. 스크린 쿼터 수호와 유니세프 봉사 등 사회적 활동에 헌신하며 대중에게 도덕적 좌표를 제시했다. 투병 중에도 가발을 쓰고 공식 석상에 서서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라며 촬영장 복귀 의지를 밝히던 그의 미소는 많은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깊은 감동을 안겼다.

 

지난 2008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 레드카펫 인사를 하는 안성기. 연합뉴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명예장례위원장 신영균, 배창호 감독, 한국영화배우협회 이갑성 이사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신언식, 한국영화인협회 양윤호 이사장 등 4인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 영화인들이 운구를 맡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