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매장에서 1500원짜리 과자를 결제하지 않은 재수생에 대해 검찰이 절도죄가 인정된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됐다. ‘제2의 초코파이 사태’가 불거질 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최근 김모씨가 낸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재수생이었던 김씨는 2024년 7월24일 밤 10시30분쯤 경기도의 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1500원짜리 과자 1개를 결제하지 않고 나온 혐의를 받았다. 당시 김씨는 점포에서 아이스크림 4개와 과자 1개를 골라 계산대에 올린 뒤 아이스크림 4개와 비닐봉지 값을 합친 3050원만 결제했다. 또 냉동고 위에는 다른 8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한 개를 올려둔 채 가게를 떠났다.
점주는 김씨가 과자를 훔치고, 냉동고 위에 올려둔 아이스크림이 녹아 판매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느라 부주의해 과자를 깜박 잊고 결제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김씨는 점주에게 합의금으로 10만원을 건넸고, 점주는 “알고 보니 김씨가 내 친구의 자녀였다”며 김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그런데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두 달 뒤인 9월 김씨에게 절도 혐의를 적용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김씨가 2300원(1500원짜리 과자와 냉동고에 올려둔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어치의 재물을 절취했다고 본 것이다. 기소유예는 불기소 처분의 하나로 혐의는 인정되지만 범행 동기와 정황 등을 고려해 검찰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하는 결정이다.
이에 김씨는 같은 해 11월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김씨는 “아이스크림을 절취한 사실이 없고, 당시 대학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던 상황에서 음악을 들으며 물건을 고르느라 주의가 산만한 상태에서 실수로 과자 결제를 누락했을 뿐 절취의 고의가 없었다”며 “혐의를 인정하는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검찰의 결정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가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공개된 장소이며 △점주와 김씨 어머니가 친구 사이인 점 등을 고려해 “김씨가 불과 1500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자 했을 동기나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김씨가 수시로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는 등 결제 내역 문자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과자를 따로 결제하지 않았으니 절취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문자 메시지 내용 확인이 아닌 단순히 재생 중인 음악을 바꾸는 등 다른 목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봤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봤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수사가 이뤄진 내용만으로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김씨의 절취 행위가 인정된다거나 과자에 대한 김씨의 절취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움에도 검찰은 김씨에게 절도죄가 성립함을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며 “이 기소유예 처분에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 미진 또는 증거 판단의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해 김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짚었다.
이어 “사건 당시 가게 내 CCTV에 촬영된 영상에 의하면 김씨는 이 사건 아이스크림을 냉동고 위에 올려둔 채 내버려두었을 뿐, 이를 가져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김씨가 절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아이스크림을 자신의 점유로 이전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아이스크림에 대한 김씨의 절취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과자 절도에 대해서도 “김씨에게 절취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씨는 당시 아이스크림 4개의 대금을 정상적으로 지불했고 구매 상품을 담을 비닐봉지 값 50원을 별도로 입력해 결제하기도 했다. 김씨가 나머지 상품들을 모두 계산하면서 유독 고의로 이 사건 과자만을 계산하지 않고 따로 절취하고자 했을 이유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근 논란이 된 ‘초코파이 절도 사건’과 유사해 검찰의 기계적 처분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앞서 전북 완주군 현대차 전주공장 출고센터 내 물류회사 사무실에서 하청업체 소속으로 보안 업무를 하는 A씨는 새벽 근무 중 물류회사 사무실 냉장고에 있던 초코파이(400원)와 카스타드(650원) 과자를 먹은 혐의로 고발됐고, 전주지검은 그를 절도죄로 기소했다. 당시 “과연 기소까지 할 문제인가”라는 비판이 일었고 논란이 커지자 검찰은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검찰 시민위원회를 열었다. 2심 재판부도 “(세상이) 각박한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범죄 고의가 없다”며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