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말 한 마리가 동쪽 능선을 뛰어넘듯이 병오년(丙午年)이 밝았다. 인류 문명사에서 말은 단순한 종(種)이 아니었다. 증기기관이 등장하기 전, 이 짐승은 인간이 땅 위에서 부릴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동력이었다. 와트가 새 시대의 단위로 ‘마력’을 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거대한 근육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인간의 지평을 넓혔고, 네 다리가 대지를 박차는 소리는 원초적인 리듬이 되었다. 기계음이 세상을 덮기 전, 말발굽 소리는 속도와 공포, 환희를 오선지 위에 옮겨낼 수 있는 토포스였다.
말의 보법은 그 자체로 박자가 되곤 했다. 평보는 네 발이 각각 땅을 짚는 4박, 속보는 대각선 두 발이 맞물리는 2박, 구보는 넘실대는 3박에 가깝다. 습보는 긴박한 4박의 연타 끝에 네 발이 모두 지면을 떠나는 찰나, 그 사이로 짧은 정적의 공간이 끼어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박자가 아니라 중력의 감각이다. 땅을 디딜 때 눌림, 공중으로 솟을 때의 부유. 작곡가들은 이 눌림과 비움의 교대에서 긴장의 원형을 발견했다.
클래식 음악에서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곡은 ‘윌리엄 텔’ 서곡 피날레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금관 팡파르와 함께 현악기군이 쏟아내는 리듬은 말발굽이 지면을 박차는 물리적 타격음을 음향으로 재현한다. 주페의 ‘경기병’ 서곡 또한 화려한 금관악기의 포효와 현악기의 우아한 질주를 통해, 가벼운 무장으로 전장을 누비는 기병대의 위풍당당한 기상을 그려낸다. 여기서는 말의 속도감이 곧 승리의 확신이다.
다만 악보 위의 말발굽은 끝내 모사에 그친다. 살아있는 말이 땅을 박차는 순간의 육중한 공명은, 수백 킬로그램의 몸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먼지, 김처럼 피어오르는 숨결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비로소 완성된다. 홍콩에서는 새해마다 경마장에 모여 첫 질주를 지켜보며 한 해의 복을 비는 ‘러키 스타트’ 행사가 열린다. 우리에게도 그 기회가 있다. 경주가 열리는 날에 렛츠런파크를 방문해 결승선 가까이에 서 있어 보자. 트랙을 가르는 말발굽의 박동이 공기보다 먼저 발바닥을 두드리고, 그 진동이 흉곽 깊숙이 스며든다. 악보 위에서 개념으로 정리되던 리듬이 다시 물성을 되찾는 순간이다.
어쩌면 당신의 심장은 이미 그 박자를 잊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병오년, 모두가 그 뜨거운 본능을 타고 거침없는 기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