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쉬는 시간이면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한번은 아버지와 같이 기차를 타고 아버지 고향의 친척 집 행사에 간 적이 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그때도 뭔가를 읽다가 작은 수첩에 메모를 했다. 깨어 있을 때는 그저 막걸리를 마시거나 힘든 일을 하는 게 다였던 단순한 캐릭터가 아버지였는데 오히려 뭔가를 쓰던 순간의 아버지 얼굴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날 기차에서 아버지의 수첩을 잠깐 열어봤던 기억이 난다. 거기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단어들이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습관이 나한테도 이어졌는지 새해가 되면 문구점으로 가 일기장을 산다. 올해도 유선이 나을까, 무선이 나을까 매해 하는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조금 두꺼운 재질의 미색 노트를 선택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도 있을 듯해 묵직한 연필선이 잘 배일 그런 화집 같은 일기장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또 언젠가 친한 언니와 같이 산 블랙윙 연필도 두 자루 있고, 이제 글쓰기 연장은 모두 다 갖춰진 셈이다.
강영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