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까르띠에/ 프란체스카 까르띠에 브리켈/ 서정은·서재희 옮김/ 케이커넥톰/ 3만6000원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하우스 ‘까르띠에(Cartier)’ 창업가의 6대손인 저자 프란체스카 까르띠에 브리켈이 수백 통의 가족 서신과 아카이브를 직접 발굴하며 펴낸 책이 최근 한국어로 출간됐다. 책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까르띠에 설립 가문이 4세대에 걸쳐 쌓아 올린 꿈과 도전, 성공의 역사를 담고 있다.
까르띠에의 출발은 소박했다. 1847년,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파리의 작은 보석 공방을 인수하며 역사가 시작된다. 까르띠에를 세계적 명성으로 끌어올린 주역은 그의 손자 세대인 루이, 피에르, 자크, 이른바 ‘까르띠에 삼형제’였다. 이들은 각자 파리, 뉴욕, 런던을 맡아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는 오늘날 명품 비즈니스의 원형이 됐다.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오늘날 남성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는 손목시계. 그러나 그 기원은 의외로 여성의 팔찌 시계에 있다. 까르띠에 시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브라질 출신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이다. 그는 비행 중 회중시계는 조정대를 놓지 않고는 꺼내 시간을 확인할 수 없어 불편하다고 자주 불평했다. 이를 전해 들은 루이 까르띠에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당시 여성 치장용 액세서리인 팔찌 시계에 착안해 세계 최초의 현대적 손목시계 중 하나인 산토스를 만든 것. 이 사례는 까르띠에가 단순히 귀족 취향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과 생활의 변화를 읽어낸 브랜드였음을 보여준다.
진주 목걸이 하나의 값으로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 한 채를 사들인 일화도 소개된다. “1916년, 피에르는 뉴욕 부티크에서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목걸이로 알려진 진주 목걸이를 선보였다. 각각 55개와 73개의 흠 없는 진주로 만든 두 줄의 진주 목걸이였고, 그 가치는 당시 100만달러가 넘었다. 목걸이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서른한 살의 메이지 플랜트는 목걸이에 강렬하게 매료됐다. 메이지는 철도와 증기선 사업으로 부를 쌓은 모턴 플랜트의 아내였다. 뉴욕 요트 클럽의 제독과도 같았던 모턴은 그의 젊은 아내를 애지중지하기로 유명했다. 어느 날 저녁, 디너 파티에서 피에르와 나란히 앉은 메이지는 진주 목걸이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도 자신은 구매할 능력이 없는 척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60대인 모턴 플랜트가 두 번째 아내인 메이지를 열렬히 사랑하며,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그가 5번가와 52번가 모퉁이에 있는 저택을 매각하려 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양식의 5층짜리 궁전 같은 저택과 진주 목걸이의 가치는 둘 다 100만달러였다. 이에 피에르는 모턴 플랜트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당신의 저택을 준다면, 이 진주 목걸이를 양도하겠습니다.’ 다행히 메이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진주 목걸이와 저택의 열쇠 꾸러미가 맞교환됐다. 얼마 후 까르띠에는 5번가와 52번가에 있는 새 건물로 이사한다.”(156∼157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