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현지시간으로 9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0일 0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대한 판결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과 관련, 증권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위법 판결이 나올 경우 그간 거둬들인 막대한 규모의 관세를 토해내야 할 처지가 되는 만큼 주식과 채권, 외환을 가리지 않고 금융시장에 전방위적인 충격을 안길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다만 국내 증권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순순히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법원 상호관세 판결…15% 한국에 영향줄까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6일 홈페이지를 통해 현지시간으로 9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늘 자정) 대법관들이 비공개회의를 통해 사건을 논의할 것이며 결정문을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상호관세 관련 판결이 나오는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법원은 어떤 사건에 대한 판결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사건 선고 결과는 지난해 1월 집권 이후 ‘관세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는 물론 세계 무역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1·2심은 트럼프가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은 위헌적이고 위법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결했다. 안보, 외교 정책, 경제에 “이례적이고 비상한 위협”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외환 거래 등 금융 활동을 금지하거나 외국인의 미국 내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 법을 상호관세 부과 근거로 쓸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1·2심은 이 법이 관세 부과를 대응 수단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선고 결과는 15%의 상호관세율을 적용받는 한국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상호관세가 즉각 무효화한다면 상당수 한국 상품 관세율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효력을 발휘할 때처럼 0%로 내려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관세를 지렛대로 한 미국의 압박 탓에 내놓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약속 등 협상 결과를 놓고도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트럼프가 부과 협박을 한 25%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는 것 등이 대미 양보의 반대급부였기 때문이다. 상호관세가 무효화되면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는 지나친 양보를 한 것이기 때문에 합의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통상부는 대미 합의는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상호관세뿐 아니라 자동차 품목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려는 목적도 컸기 때문에 당장 한·미 합의에 변화를 꾀할 입장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연방대법원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패소하면 합의의 효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에 “연방법원에 가 있는 건 상호관세”라며 “자동차 등 품목관세는 지금 대법원에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패소가 확정되더라도 특정 품목 수입이 안보를 위협한다면 관세 부과 등 수입 제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한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근거해 품목관세 부과 범위를 넓히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 “영향 제한적일 것”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정부도 플랜B를 준비 중이다. 무역확장법 232조와 통상법 301조 등을 통해 관세를 유지하거나 재부과할 것”이라며 “이러한 수단은 조사와 보고 등 절차에 최소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급한 대로 무역적자 심화시 150일 동안 1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112조를 통해 시간을 벌고 추후 관세를 유지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자체가 혼란스러운 만큼 “관세 환급은 미국 연방재정적자 우려를 높이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소비와 투자심리는 또 한 번 정체될 공산이 크다”고 허 연구원은 짚었다.
허 연구원은 “예컨대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트럼프 관세로 분기당 1조∼2조원 손해를 본 만큼 수혜가 예상되나 실제 환급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면서 “그래도 트럼프 정부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는 게 중요하다. 트럼프 정책 피해주라고 볼 수 있는 배터리와 신재생 쪽은 심리가 다소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혜영 LS증권 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위법 판결 가능성 자체는 높지만 환급의 불확실성, 대체관세 부과가능성 등을 고려해 보면 2026년 미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설령 관세가 낮아진다고 가정해도 현 상황에서 미국 경제에 명확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라며 “소비자 및 기업 심리개선으로 내수경기에는 플러스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순수출에는 기여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혜란 삼성증권 연구원은 “전체적으로 시장 영향은 중립”일 것이나 “산업별로는 품목관세 확대 위험에 따라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요 식료품 수입국 관세 인하, 목재 가구 관세 연기 등 중간선거를 앞두고 생활물가에 영향을 주는 관세에 한발 물러선 모습을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품목관세가 크게 확대될 여지는 낮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