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사랑스럽고 온갖 캐릭터가 펼치는 연기는 환상적이다.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했던 애니메이션 속 세계가 과잉된 영상이나 기술에 기대지 않고 온전한 인간의 상상력과 몸으로 구현된다. 무대로 다시 찾아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연극이란 틀에 넣어두기엔 아까운 극장형 판타지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등 일본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성싶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들어낸 애니메이션들. 거장의 8번째 장편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작품이다.
줄거리는 부모와 함께 시골로 이사하던 열 살 소녀 치히로가 낯선 세계에서 신비한 온천장 주인인 마녀 유바바와 계약을 맺고 하녀로 일하며 여러 모험을 거쳐 훌쩍 성장한다는 원작 그대로다. ‘보호받는 아이’가 아니라 ‘결정하는 주체’로서 10살 소녀를 위한 영화, ‘일한다’는 것의 존엄함을 알려주는 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거장 미야자키의 주제의식이 무대에서도 또렷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부터 미야자키와 협업해온 히사이시 조가 이 작품을 위해 만든 음악 역시 극장보다 무대에서 훨씬 더 큰 울림을 들려준다. 무대 안쪽에서 11인조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선율은 그 느린 진행과 여백이 무대 위 정적과 결합한다. 어느 순간 관객은 장면을 본다기보다 그 안에 잠시 머물게 된다.
원작에서도 유바바 목소리를 연기했던 나쓰키 마리의 밀도 높은 연기 등 출연진 또한 일본 극무대 저력을 보여준다. 특히 지난 7일 개막공연에서 ‘치히로’로 무대에 선 가미시라이시 모네는 2022년 일본 초연 때부터 주역을 맡아온 내공을 펼쳐냈다. 대형 욕조에 빠지는 장면이나 마녀의 방을 찾아가는 사다리 장면 등에서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동작을 무대 언어로 치환해서 동작의 리듬과 감정의 진폭을 함께 살린다.
개막 공연에 앞서 국내 취재진을 만난 이 배우는 “치히로는 항상 두 발로 당당하게 서 있다”고 강조했다.
“원작을 보고 깨달은 건 치히로가 항상 두 발로 똑바로 당당하게 서 있다는 점입니다. 결코 어느 한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두거나 벽에 기대지 않고 반드시 자신의 두 발로 스스로 서 있는 그 모습이 정말 좋아서 연기할 때의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치히로가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싶을 정도로 과감한 행동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분명 자신의 직감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치히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믿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름의 소중함’입니다. 주인공이 이름을 빼앗겼다 다시 찾는데 부모님께 받은 이름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이 가득한 보물인지 관객분들이 느껴주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