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에 대한 군사 개입을 잇달아 시사하고 이란이 보복 의지를 내비치면서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양측은 강경 발언을 이어가면서도 한편으로 대화 준비에 나서고 있어, 이번 접촉이 향후 정세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워싱턴으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서 이란 상황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군이 검토하고 있으며, 매우 강력한 선택지를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란의 보복 위협에 대해서는 “그렇게 한다면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강력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 이란 지도자들이 전화했다”며 “그들은 협상을 원한다. 회담이 준비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군사·민간시설을 목표로 한 사이버 공격이나 온라인 반정부 여론 확산 지원, 경제 제재 확대, 군사 타격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2일 “이란은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에는 완전히 대비돼 있다”며 “대화도 준비됐다”고 맞받았다. 이어 “시위는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개입을 경계했다.
이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2주째 이어지며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최근 2주간 시위로 시민 496명을 포함해 최소 544명이 사망하고 1만6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이날 전했다.
이란 정부는 과거에도 수차례 반정부 시위를 잠재웠지만 이번 시위는 구조적 측면에서 과거 시위와 다른 데다 외부 압력까지 겹치면서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47년간 이어온 신정체제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2009년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항의, 2019년 유가 인상 항의, 2022년 히잡 단속 항의 등 2000년대 들어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만 해도 수차례다. 과거 시위 구호는 당연히 정권 비판과 퇴진이었지만 주로 기존 체제를 고치거나 특정 인물·정책을 바꾸자는 맥락이 강했을 뿐 체제를 ‘전복’하자는 요구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이전과 달리 발화점이 화폐 가치 폭락과 고물가 같은 생존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권 비판을 넘어 체제 붕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참여 계층이 상인층 위주에서 청년, 중산층 등으로 저변이 넓어졌다는 점도 파급력을 키운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입지도 어느 때보다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나탄즈·포르도·이스파한 핵시설을 공습한 ‘12일 전쟁’으로 정권이 경제적 번영은 주지 못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은 지켜 줄 것이라는 이란 국민의 믿음이 깨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히잡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여성이 거리에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사진을 태워 담뱃불로 사용하는 사진이 확산하는 것도 체제 약화를 보여준다.
현재로써는 이란 반정부 시위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체제 붕괴가 곧바로 안정으로 이어질지 불투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미국도 군사 개입의 수위와 시점을 신중히 저울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차기 권력 구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소수민족 간 무력 충돌과 안보 공백이 겹치면 사태가 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