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남의 일 아니다”…40대, 계산기 두드리는 ‘진짜’ 이유

40대 책상 위에 올라온 계산기, 희망퇴직이라는 선택지

점심시간이 지난 12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본점 사무실은 조용했다. 한 중간 관리자급 직원은 모니터를 끄고 서랍에서 계산기를 꺼냈다. “급한 건 아니지만, 안 볼 수는 없게 됐다”고 했다. 

 

은행권 조직 운영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최근 은행권에서 희망퇴직 논의가 다시 나오면서다. 일부 은행이 만 40세 이상까지 대상을 넓히자, 그동안 남의 일로 여겼던 고민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숫자는 손에 잡히는데, 결정은 그렇지 않았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희망퇴직을 실시한 은행에는 NH농협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이 포함된다.

 

조건은 조금씩 다르지만, 근속연수와 직급을 반영한 특별퇴직금은 평균 임금 기준 20개월 안팎, 많게는 30개월을 넘긴다.

 

조건만 놓고 보면 계산은 가능하다. 실제로 내부 메신저나 비공식 자리에서는 “일단 따져는 본다”는 말이 오간다. 다만 그 계산이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른 시중은행 직원은 “아이 학비, 집 대출, 부모 병원비를 한꺼번에 놓고 보게 된다”며 “더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숫자를 보면 마음이 정리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고 잠시 말을 멈췄다.

 

모든 은행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KB국민은행은 이번 희망퇴직에서 대상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유지했다. 은행 측은 인력 구조와 영업망 특성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업권 안에서도 선택은 갈렸다.

 

◆빠져나가는 사람, 그대로 남은 자리

 

희망퇴직 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분명히 늘어나는 흐름이다. 이미 절차를 마친 은행들만 봐도 퇴직자 수는 전년보다 두 자릿수 이상 증가했다. 5대 시중은행 전체로 보면 1년 새 300명 넘게 늘었다는 집계도 있다.

 

반면 새로 들어오는 인원은 같은 속도가 아니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정규직 채용 규모는 오히려 전년보다 줄었다. 나간 자리를 같은 수로 채우지 않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중간 연차 직원들 역시 그 흐름을 체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은행권 한 관계자는 “점포 수가 줄고 비대면 거래 비중이 커지면서 예전처럼 많은 인력이 필요한 구조는 아니다”라며 “업무 방식이 바뀐 만큼 사람을 운용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오프라인 점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창구를 찾는 고객은 줄었고, 단순 업무 상당 부분은 자동화됐다. 현장에서 느끼는 인력 수요 역시 과거와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밀어낸다기보다, 테이블에 올린 것”

 

은행권은 이번 희망퇴직을 구조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발적 신청이 전제된 제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연령 기준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내부에서 먼저 나왔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40대 초반에도 이직이나 창업, 가족 문제를 고민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며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선택지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언급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희망퇴직을 선택한 40대 직원 가운데에는 재취업을 준비하거나 개인 사업을 계획하는 경우, 혹은 육아나 가족 사정으로 잠시 속도를 조절하려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전체 신청자 가운데 40대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설명이다.

 

사상 최대 실적과 희망퇴직이 같은 시기에 맞물린 점을 두고 현장 반응은 단순하지 않다. 수익이 늘었다고 해서 고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분위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상 연령이 내려갔다는 것 자체가 조직이 이미 다른 단계로 넘어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며 “예전에는 계산할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 이제는 직접 숫자를 눌러보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