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만 옥죄다 외화 곳간 털려…미장 매수세는 역대급

정부는 그간 치솟은 원·달러환율을 잡기 위해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해외투자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옥죄면 환율이 안정화될 것이란 단순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바람과 달리 서학개미들의 매수세는 연초부터 거셌다. 당국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내리면, 이를 ‘미국 주식을 싸게 살 기회’로 여긴 서학개미들이 대거 달러 쇼핑에 나서며 다시 환율 상승을 자극하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2일까지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약 23억6739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같은 기간 미국 주식 순매수액 가운데 최고치다. 전년 동기(13억5700만달러) 대비로는 약 43% 증가한 수치다.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70원대로 올라선 13일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에 환율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뉴시스

금융당국은 최근 투자자 보호와 환율 안정을 명분으로 증권사들이 신규 마케팅과 이벤트를 중단하도록 강력하게 압박해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주요 증권사의 해외투자 영업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일부 증권사 대표들을 소집해 직접적으로 증권사의 해외주식 신규 마케팅 중단 안내를 내리기도 했다.

 

결국 메리츠증권과 유진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은 미국주식 거래 수수료와 달러 환전 수수료를 면제해주던 이벤트를 조기 종료했다. 하나자산운용은 ‘1Q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의 보수 인하를 예고했다 자진 철회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압박이 무색하게 서학개미들은 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해 푼 달러를 미국 주식 매수용 실탄으로 흡수하면서 사실상 외환 곳간이 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높은 환율 부담으로 주춤했던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가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달러 수요가 늘면서 환율도 더 하락하진 않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이미 중장기 자산 운용 수단으로 자리잡은 해외주식 투자를 금융당국이 인위적으로 옥죄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한 국내 증권사의 임원은 “정부가 연말 국민연금 환헤지 확대와 외환시장 안정 조치, 해외투자 관련 세제 방안 등을 잇달아 내놨지만 결국 서학개미들의 미국투자는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해외투자 마케팅 압박이 실제 효과가 없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